날씨의 변덕에 견디다 못해 한 이틀을 시름시름 앓고 난 뒤, 아이에게 미안해서 한마디 던져 본다. “뭘 해 줄까?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이 말에 우리 작은 아인,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훠궈(火锅)요!”라고 답한다. 이 아인 정말, 이 음식을 즐긴다. 요리랄 것도 없는 이것을 참 즐긴다. 멸치나 다시마 국물에 미소된장으로 살짝 다시 간을 해서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끓여먹는 이 간단한 음식이 우리 아인에겐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되고 있다. 먹을 때 정말이지 열심히 열심히도 건져먹는다.
특히나 자신이 즐기는 버섯과 고기, 가래떡 썬 것, 이런 것들은 누구에게 질세라, 쉬지 않고 가져다 먹으려 한다. 옆에 있는 누나가 음식에 너무 욕심 부린다고 온갖 말로 면박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댄다. 잘 먹는 모습이 내 눈에는 이쁘게만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식사 할 때면 민망할 때도 가끔은 있다. 그래도 우리 아인 정말 열심히 먹는다. 다 먹고 배가 불러오면 포만감과 더불어 너무나 행복하다는 말도 곁들인다. 정말 맛있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언제 또 해줄 것인가를, 꼭 약속까지 받아내려 한다.
물론, 이 아인 집에서뿐 아니라, 밖에서 사 먹는 훠궈도 즐긴다. 문득,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이 음식 앞에선 이 아이에게 “빨리 먹어라”, “좀 더 먹어라”고 잔소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아빠나 누나도 모두다 이 음식을 즐기고 있다. 나는 아주 즐기는 건 아니지만 준비하기 간단하고 특히나 아이도 좋아하기에, 아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해줄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우리들 누구에게나 카타르시스적인 음식이 있을 게다. 먹고 나면 마음이 일순간 행복해지는 그런 음식이 하나쯤은 있을 게다. 엄마가, 할머니가 어렸을 때 해주셨던 것 일수도 있고, 학창시절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먹었던 것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여행길에서 맛보았던 추억의 음식일 수도 있고…. 나에겐 김밥이 그렇다. 몸이 축 늘어지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맛있는 김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정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정말 촌스럽다고들 하겠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카타르시스의 근원지인 것을…. 다행이다 싶다.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음식이기에. 만약에 내 음식의 카타르시스가 좀 더 고상하고 세련된 음식이라면 내 생활이 가끔씩 더 울적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옛날에 먹어봤던 느낌과 꼭 같지는 않겠지만, 한번쯤은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있다. 추운 겨울, 아버지고향 장독 속에 담가져 있던 큰어머니 손으로 꺼내주시던, 그 차갑디 차가웠던 그리고 너무나 달콤했던 감, 이것도 정말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 고등학교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늘 먹었던 쫄면, 이 쫄면이 있어서 자율학습도 했었는데 이 쫄면도 정말 먹어보고 싶다. 우리 학교 앞 쫄면은 국물이 가득했었는데, 우리들의 허기를 정말 잘 채워주었건만, 어딜 가도 이젠 이런 쫄면은 만날 수가 없다.
우리 아이의 카타르시스가 훠궈인게 정말 다행이다. 너무나 쉽고도 간단한 것이라서, 내가 언제든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서.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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