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저 글이 무슨 뜻이에요?”
“독-도-는-한-국-영-토”
한가하고 따스한 주말 어느 중국 할아버지가 손녀딸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가 우리 집 앞에 다정히 서서 한자한자 손녀에게 읽어주고 계셨다.
얼마 전 우리는 이사를 했다. 2년여의 아파트 생활에서 다시 비에수(别墅)로 오게 됐다. 남들이 상상하는 근사하고 화려함은 없지만 아파트보다 주택을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일주일 전부터 매일 오가며 비어있던 집을 구석구석 힘든 줄도 모르고 청소를 했다. 오래된 단지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약간은 빛 바랜 집에서 오는 친밀감, 따뜻한 바람과 햇볕, 새소리 그리고 낮은 울타리로 만나는 이웃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니 하오’로 인사를 나누며 이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기대했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던 그날 우리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를 감사하며 드디어 이사를 했다. 이삿집 센터에서 제멋대로 부려놓은 짐들을 며칠을 걸려 정리하고 남편은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태극기와 오성기를 나란히 붙였고 그 위 아래에 ‘독도는 우리땅’이란 글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써 붙였다. 당연히 지나가는 중국사람들은 관심을 보였고 어떤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문까지 들어와 여러 가지를 묻고 알고 싶어했다. 사실 처음에 나는 뭘 그렇게 까지 유난스럽게 할 필요가 있냐며 은근히 못마땅해 했는데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자기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파트생활에 익숙한 지인들은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지 않냐, 생활하기가 좀 그렇지 않냐 등 염려를 한다. 사실 약간의 그런 부분도 없진 않지만 이 정도의 댓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주말이면 지인들과 아이들의 친구들이 찾아오고 우린 밖에서 맘껏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가 있고 풀잎을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에 마냥 즐거워하며 정을 나눌 수 있다. 또 우린 마당의 작은 귀퉁이 땅에 딸기 두 포기를 심고 상추, 고추, 오이, 토마토와 약간의 꽃씨도 심었는데 어설픈 작업에도 불구하고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게다가 놀랍게도 올해는 기대도 못한 딸기가 벌써 빨갛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노년을 시골에서 보내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뜻밖의 이 작은 공간은 훗날을 상상하는데 아주 반가운 역할을 했다. 이렇게 우리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고 우리의 모처럼의 어설픈 몸짓들은 우리를 웃게 만들고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아침마다 마당에 나와 기지개를 펴고 마당을 쓸고 뜨거운 태양아래 빨래를 널며 난 어릴 적 시골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이웃집 골목까지 쓰시던 할아버지의 넉넉한 마음을 회상한다. 그러곤 쪼그리고 앉아 뿌린 씨앗에서 솟아나온 새싹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어떤 조건에서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신께 감사하며….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