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프로에 ‘진짜 남자의 자격’이란 주제로 유부남 영화배우들이 나와서 재미있는 입담을 펼쳤다. 얘기 중에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은 집 현관문이 자동문, 회전문이면 좋겠다는 말에 한참을 혼자 웃었다. 그 자동문, 회전문이 우리 집에 10년 째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술을 참 좋아한다. 냉장고 속 물병 옆에 술병이 자연스럽게 있다. 나의 두 딸은 두 돌 즈음 TV에 술병이 나오면 “아빠꺼”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 병뚜껑 따는 소리만 들어도 취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술 없이 못사는 듯.
문제는 남편의 주사다. 남편의 주사는 음주 후 샤핑(shopping)되시겠다. 한번은 밤늦게 한국수퍼용 대형 비닐봉투 11개가 집 현관으로 들어 온 적이 있다. 기사아저씨가 양손에 서너 개씩 들고 들어오는데 놀랍게도 전부 과! 자!! 가격은 인민폐 1990원!!! 자는 애들 깨워서 아빠가 과자 사왔다고 한바탕 호기를 부리는 남편을 살살 달래서 재우고 두 눈에 핏발서게 밤을 샜다. 다음 날 최대한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한국 수퍼에 전화를 했더니 감사하게도 술 취한 남편의 과소비(?!)를 십분 이해해주시는 사장님 덕에 현찰로 바꿔왔다. 뭐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다. 언젠가는 집에 까스명수 몇 개는 있어야겠다고 했더니 또 한잔하시고 다섯 박스를 사왔다는. 언젠가는 엘리먼트 후레쉬에서 오렌지 쥬스가 새롭게 나왔는데 맛있더라 했더니 냉장실 하나 가득 50개의 주스병이 들어있었다.
적당히 술 한 잔하고 일찍 들어오는 날은 내겐 비상이다. 두 딸 손잡고 다정하게 나가서는 장난감, 학용품, 주스, 콜라, 젤리, 사탕, 달콤한 비스킷, 어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열대과일까지 몇 봉지를 들고 나타난다. 그대로 들고 나가 팔아도 될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다. 이젠 딸아이들이 좀 커서 엄마의 정신교육이 먹히는 덕에 아빠에게 꼭 먹고 싶었던 과자 하나, 주스 한 병, 과일 몇 개를 사는 걸로 합의를 보고 있다. 두 딸을 위한 샤핑에 무한대로 관대한 남편에게 이젠 두손두발 다 들었다.
얼마 전 남편을 위한 샤핑을 다녀왔다. 계절은 더워지는데 남편이 입을 옷이 딱히 없다. 입을만한 카디건 하나, 티셔츠, 바지 하나를 사왔다. 오랜 자취생활을 했던 남편이 결혼할 때 신혼 집으로 들고 온 짐은 목화솜이불 한 채와 양복 한 벌, 구두 한 켤레가 전부였다. 결혼 전 회사에서 다녀온 야유회사진에서 남편만 유일하게 정장 구두를 신고 있었다. 지금도 계절별 바지 하나에 티셔츠 몇 장으로 일 년을 지내고 여름양복 한 벌, 겨울양복 한 벌로도 불평이 없는 남편이다. 대신 신발은 제법 다양하다. 야유회에서 유일하게 정장구두를 신고 있었던 사 진속의 남편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멋진 남자신발을 보면 꼭 사주고 싶다.
얼마 전 네이버에서 2010년 파워 블로거에 선정되었다며 축하상품으로 자사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Gift point를 보내왔다. 미리 쇼핑목록을 보니 탐스 슈즈도 있더라. 미리 남편 발 사이즈의 탐스 슈즈를 신청했다. 꼭 내가 돈 벌어서 사주는 거 같아 기분이 새롭다. 남편을 위한 탐스 슈즈 한 켤레, 여름 티셔츠 한 장을 주문하니 새 신발 신고 티셔츠입고 좋아할 환한 남편 표정에 벌써 행복하다.
미안해~ 돈 안 버는 마누라라 많이 못해줘서 많이 미안해. 그리고 많이 고마워 자기야.
▷B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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