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심근경색이라는 급환으로 64세에 명을 달리하신 선친께서 남기신 글 얘기를 해야겠다.
심근경색이라는 것이 워낙 창졸지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유언 한마디 남기시지 못하시고 유명을 달리하신 선친을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억울하고 원통하기가 이루 필설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某 정수기 총판점을 운영하셨던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선친 책상 유리판 밑에 끼여있는 다음의 글을 보고는 이것이 바로 선친께서 세상에 남은 가족들에게 남기시는 마지막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克己>
•항상 내 마음을 경계하고, 내 행동을 살펴보며, 화근을 불러 일으키는 입과 혀를 조심하라.
•매사에 자신이 있고 깨끗할 때 마음이 편하고 큰 소리 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 교만과 아집은 넘어짐의 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항상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물러서는 것이 곧 나아갈 밑천이다.
•남을 손해 보게 하면 마침내 자기도 잃어버리게 되고, 권세에 의지하게 되면 화가 반드시 잇따를 것이다.
•절제하지 않으면 집을 망치고, 청렴하지 않으면 벼슬을 잃고 만다.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나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원망이 수십 배의 재앙으로 변해서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개인의 재능은 人和의 힘에 못 미친다. 不和는 자멸의 길이다.
•하늘은 그가 노력한 만큼 그에게 몫을 주게 되어있다. 힘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누런 A5 작은 용지 하나에 가득 채워진 이 글들을 보면서 필자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꼬장꼬장하신 성품을 유지하시면서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경계를 삼으실 글을 늘 가까이 하셨다는 사실과 한치의 흐트러지심도 보이지 않으셨던 선친의 솔선수범의 교훈이 온 몸과 혼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선친께서 유명을 달리하신 지 9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 종이는 위치를 바꿔 액자에 넣어져 항상 책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해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선친의 자상함과 엄격함을 필자와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게을러지고 나태해지고 혼탁한 생각이 들 때면 작은 A5 크기의 종이는 세상을 덮을 듯한 크기와 엄청난 무게로 내게 꾸지람을 준다.
“네 이놈!! 네 스스로를 이겨내라!”
이제 다시 시작되는 상하이의 무더운 여름, 선친의 기일을 맞아 추도 예배를 준비하면서도 무언가 허전함에 이것 저것 맛난 음식을 준비한 아내를 보면서 다시금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이젠 제법 청년 티가 나는 두 아들에게는 해마다 전해주는 얼굴도 가물거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지겨울 법도 하겠지만 필자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무슨 얘기를 할까 골몰한다.
늘 지혜롭게 사는 것을 강조하신 선친을 기리며 성경의 잠언을 읽고 추모 예배를 마친 뒤 스스로에게 세상 존재의 근본이신 선친에 대한 고마움과 남기신 뜻을 가슴에 다시 새겨본다. 선친이 직접 창작하신 글은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선친의 뜻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가족을 대하면서도, 많은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서도 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당신은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 진정으로 고맙고 고맙습니다. 제가 생전에 말씀 드렸던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들답게 멋지게 해낼게요.”
여전히 밖은 찌푸린 구름이 잔뜩이다.
▷정창수(상해 한백교육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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