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거주하는 한국교민이라면 임시정부 소개 글도 보고, 직접 방문해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임시정부가 대한민국 독립을 이끄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세운 것인지 상세하게 알고 있지는 못할 수 있다. 8•15 광복절을 맞아 상하이 임시정부의 역할을 알아보도록 하자.
상하이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일본에게 빼앗긴 정부를 대신하여 1919년 3월 14일 중국의 상하이에 수립되어, 독립할 때까지 항일독립운동의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맞선 조직적인 독립투쟁을 위해 독립 운동가들과 우리나라 정부가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하였다.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의원들이 함께 10개의 임시적인 법적 규칙을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선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 또한 다양했다.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방침 중 가장 주된 활동들은 각국의 정당이나 사회단체 등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불운한 상황 알리기, 외국인 선교사나 신문기자 등을 통한 선전, 의원의 파견을 통한 직접적 항일 운동 알리기 등 많은 활동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업적은 바로 한•중의 친목한 외교관계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당시 중국의 국민당 정부가 대일정책 등의 해결방안을 통해서 한인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에는 실패도 있었다. 임시정부의 의원들은 미국을 상대로 외교활동과 도움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강대국의 원조에만 의지한 채 독자적인 투쟁전략을 세우지 못한 점 등의 이유들로 인하여 외교활동의 실패를 맛 보게 되었다.
전쟁을 ‘독립운동의 최후 수단’으로 규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도부터 본격적인 개전 준비활동을 시작하였다. 많은 준비 과정들 중 가장 눈에 띄게 구체화 되었던 활동은 임시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는 일과, 미국에서 비행사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육군무관학교에서는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는 형식이었고, 1920년 2월 20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어 6개월의 교육과정 동안 19명의 한인 비행사를 양성하였다. 또한 1920년 1월 31일에는 간호원양성소를 설립해서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13명의 간호병을 배출해 냈다. 이외에도 1937년 중일전쟁 중, 7월 15일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의 연구계획, 광복군 양성, 군사서적 편찬 등을 책임질 수 있는 군사위원회 결성을 결정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로 국내에서 조직기반을 확대하려고 했다. 대한독립의 성공은 국내역량에 달려있음을 일찍 깨닫고 국내 민중과 격리된 해외독립운동세력의 취약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임시정부는 국내에 특파원을 파견시켜 통신, 연락활동, 임시정부 활동 선전, 시위운동 추진, 비밀결사 조직, 국내독립운동 세력과의 연락, 그리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 등에 힘을 썼다. 1920년대 일본의 탄압에 의해 국내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는데, 이 때도 임시정부는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각종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국내동포의 경각심을 환기시켰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설립 이후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상하이(1919), 항저우 (杭州, 1932), 광저우 (廣州, 1938), 충칭 (重慶, 1940) 등 중국의 대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광복운동을 전개했다.
대한민국의 민족성, 역사성, 정통성을 지니고 나라의 독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낸 임시정부 청사 건물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90년대 초반 황피난루 주변에 명품가 등 재개발 계획이 제시 되면서 임시정부는 철거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다행히도 임시정부를 취재하던 한 신문사에서 철거계획을 알려 한국 정부가 상하이 시정부에 건물의 보존과 재개발구역에서 제외시킬 것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재개발 계획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그 동안 상하이 교민들과 한국에서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임시정부를 설립하고 문제를 차근히 풀어나간 위인들의 정신과,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결코 상하이 임시정부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쉽게 보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등부 학생기자 윤지민(BIS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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