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et#5
인문의 향기, 조용히 속삭이는 샤오싱루(绍兴路)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의 주택거리였던 샤오싱루(绍兴路). 이탈리아 국왕 이름을 따서 엠마뉴엘 거리(Route Victor Emmanuel Ⅲ)로 불리다가 1943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름 때문인지 400여 미터에 불과한 이 거리에 상하이를 대표하는 출판사가 10여 곳 자리 잡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이 많아서인지, 루쉰(鲁迅)의 고향 이름과 같은 이름 때문인지 이곳에 오면 뜬금없이 루쉰 생각이 나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에 자리를 틀고 있는 출판사에서 만든 책은 왠지 더 깊고 진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책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 서점에 들어가 책을 뒤적이게 만든다.
샤오싱루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해 진다. 빵빵거리는 차도 적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도 없고, 카페를 들어가도 대부분 혼자거나 조용조용 속삭인다. 곳곳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긴다. 혼자 밥을 먹고, 차를 마셔도, 혼자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리. 하늘을 가리는 빽빽한 가로수가 푸른 샤오싱루는 초여름에 가장 아름답지만, 황량한 거리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 겨울의 샤오싱루도 매력있다.
▷박지민(번역가, 여행가 jamani@hanmail.net)
* 신식 주택
- 18弄 진구춘(金谷邨)
1930년대 당시 상하이 시장 아들이 지은 최신식 주택촌으로 대문안으로 들어가면 황빛이 도는 3층짜리 아파트 같은 건물 6동이 나란히 서있다. 보기엔 평범한 주거지 같지만, 과거 이곳은 독일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중국까지 건너온 러시아인과 유태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모두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지금은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
진구춘 |
|
진구춘 |
- 88弄 후이안팡(惠安坊)
연한 노란빛이 예쁜 이 빌라촌은 한 여인 때문에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는 가는 눈썹의 우울한 표정의 장만옥으로 다가오는 1930년대 중국 최고의 여배우 완링위(阮玲玉,완영옥)이 살았던 곳이다. 그녀는 사랑때문에 고통받다가 ‘사람들의 말이 무섭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25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잘 모르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남의 말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
후이안팡 |
|
후이안팡 |
- 96弄 원웬팡(文元坊)
현재까지 상하이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스쿠먼(石库门)중 하나로–스쿠먼은 상하이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1800년대 중반 갑작스런 인구증가로 주택이 부족해지자 지은 2, 3층짜리 석조 건물이다. 다닥다닥 붙은 스쿠먼은 베이징의 후통과 같은 농탕을 탄생시켰다. –옛 상하이의 정취를 담는 영화나 드라마를 이곳에서 많이 찍는다. 작은 테라스를 갖은 붉은 벽돌로 지은 이곳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한 신텐디의 스쿠먼과는 달리 지금도 상하이 사람들의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
원웬팡 |
|
원웬팡 |
*출판사들
- 5号 스페인 풍의 이 거대한 저택에는 상하이시 저작권국과 상하이시 신문출판국이 있다. 원래 상하이시의 한 전력공사 사장의 저택으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집 안에 작은 천주교회까지 지었다 한다.
- 7号 상하이 문예출판사 본사
- 9号 상하이 곤극단
1935년에 지은 건물로 현재 상하이 곤극단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안에는 극장도 있어 곤극을 감상할 수 있지만 현재 건물 전체 보수 공사 중이다.
-15号 상하이 음상(音像)출판사
입구에 곤극, 경극, 중국 전통악기 연주 등의 CD를 파는 서점이 있다.
-17号 상하이 인민미술출판사 서비스부
이곳에서 인민미술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각종 사진, 화첩 등을 살 수 있다. 이밖에 54호 인민출판사, 74호 문예출판사 고사회, 출판사에서 직영하는 작은 서점들이 곳곳에 있다.
-27号, 54号와 두웨성(杜月笙)
샤오싱루 54호, 27호는 두웨성(杜月笙)이라는 인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20세기초 상하이를 주름잡던 청방 ‘ 3대 보스’ 중 한명인 그는 뛰어난 머리와 용인술로 바닥에서 시작해 30대에 결국 암흑가 최고 자리에 오른다. 장개석에 협조했으나 일본에는 저항했고, 말년에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하는 등 풍운의 삶을 살았다. 27호는 그의 4번째 부인-정확히는 부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경극 공연을 보고 반해 두 자매를 함께 아내로 삼은 뒤-동생은 일주일 뒤에 충격인지 병으로 죽고 만다–자매의 어머니까지 데리고 와 이 집에 살게 했다.
이렇게 멋진 집을 주었지만 사실 그가 십수년간 사랑한 여인은 영화’ 매란팡’에서 장쯔이가 분했던 멍샤오동이었다. 결국 50이 넘어서야 멍샤오동(孟小冬)을 다섯번째 부인으로 맞이해 홍콩으로 이주해 살았다. 아무튼 아픈 상처가 있는 이 집은 현재는 상하이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분위기도 멋지고 맛도 괜찮다. 가격은 1인 130위안 이상. 현재 인민출판사가 있는 54호는 누군가 두웨성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에게 준 집이라 한다.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는 이 저택은 두웨성의 이름을 따서 성관(笙馆)이라 불린다. 안에는 같은 이름에 고급 클럽, 레스토랑이 있다.
-한웬(汉源)서점
이미 알만한 사람에게는 알려진 상하이의 대표적인 북카페. 주인이 사진작가여서 사진, 예술 관련 책과 소설, 외국 사진집을 맘껏 읽을 수 있다. 이곳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이 상하이에 오면 꼭 들렸던 곳이고, 개인 사진집에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실었다. 그가 살아있다면 아마 매일 이곳에 출근 도장 찍을 텐데, 차는 40위안으로 비싸다.
|
한웬서점 |
|
한웬서점 |
- 비엔나 카페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도 좋지만 풍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일품인 비엔나 멜란지 커피로 유명한 카페. 처음 맛보았을 때 그 고소함과 부드러움, 깊은 맛에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요즘 내 입맛이 변한건지 아니면 길들여져 덤덤해진 건지 예전만 못한 느낌. 커피, 케이크 각각 35위안. 점심에 헝가리식 스튜인 굴라쉬와 음료, 빵 해서 75위안이다. 굴라쉬도 맛있다.
|
비엔나카페 |
|
비엔나카페 |
- 62号 샤오싱공원
중국의 공원하면 벌써 어마어마한 크기에 다리가 아파오겠지만 요 공원은 동네 주민들의 공동 마당 같은 곳이다.
|
샤오싱 공원 |
- 108号 루완구(卢湾区) 도서관
샤오싱루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곳. 1929년에 지은 곳으로 1931년 중국 최초 수학박사인 후밍푸(胡明复)의 이름을 딴 도서관으로 개관했고, 1945년 중국 민주 촉진회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최신식 시설은 아니지만 운치있고 정감있다. 게다가 신분증이나 검사도 필요없이 열람실에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고, 책을 가져가서 앉아서 읽을 수 있다. 출입구는 산시난루(陕西南路)쪽에 있다.
|
루완취 도서관 |
교통: 샤오싱루는 전철역도 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 1,10호선 샨시난루역. 여기서 1.5km 도보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산시난루도 길이 이뻐서 전혀 지루하지 않다.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