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한류(韓流) 문화상품의 중국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정부가 올해 들어 한국 TV 드라마의 수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중국 국가라디오영화TV총국(광전총국·廣電總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한국 TV 드라마는 25편. 반면 올해는 6개월간 겨우 4편만 수입했다.
중국 방송사들이 수입 허가를 신청한 한국 드라마가 50편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 허가 실적은 사실상 ‘한국 드라마의 수입 차단’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중국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 TV 드라마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방증은 적지 않다.
중국 문화부와 광전총국, 상무부 등 6개 부처는 지난해 8월 외국 문화상품의 수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문화상품의 수입관리에 대한 방법’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외국 TV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영화를 수입할 때는 반드시 광전총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은 또 문화상품의 수입 총량을 제한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이 규정은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겨냥해 만들었다는 게 중국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올해 들어 광전총국은 각 방송국에 내부용 공문을 보내 한국 드라마 상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광전총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중국의 방송드라마 제작자들이 연명으로 광전총국에 한국 드라마의 수입 제한을 요청한 뒤 시작됐다.
중국의 드라마 제작자들은 1997년 이후 한국 드라마 수입이 매년 20∼30%씩 늘면서 중국 드라마의 방영 비율이 줄어 중국드라마제작총공사가 매년 30억 위안(약 3600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대장금’이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1000∼2000달러 수준이던 한국 드라마 수입 단가가 8000∼2만 달러로 크게 오른 것도 중국 측으로서는 불만이다.
18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상하이(上海) 국제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상하이 국제방송영상견본시 2006(STVF 2006)’에서도 ‘한류 수입 억제’의 움직임이 확인됐다.
민완식 MBC 해외사업팀장은 “중국 현지 바이어들의 ‘딜 메모’(사전계약 형태)가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이번 STVF에서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 전역에 팔린 한국 프로그램 판매총액은 약 1035만 달러로 지난해의 766만 달러보다 늘었지만 중국 수출은 지난해의 7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STVF에 참석한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 역시 중국 측의 한류 수입 억제 분위기를 의식해 5월 김명곤 문화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광전총국 관계자를 만나려 했지만 광전총국 측에서 예정됐던 만남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중국 쪽 바이어들은 앞으로 반(反)한류 파고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주몽’(MBC), ‘연개소문’(SBS), ‘태왕사신기’(김종학 프로덕션) 등 중국 수출시장에 나온 한국 대작 드라마들이 동북공정 등 한국과 중국이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기를 다뤄 수입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은혜정 해외사업팀장은 “중국 정부는 경제적인 부분보다는 문화적 의미를 중시해 쌍방 교류 없이 한국 드라마 등 한류만 중국에 파고드는 것을 염려한다”며 “따라서 한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면 눈앞의 수출 이익만 보고 접근하기보다는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그들의 정서를 고려하고 쌍방 문화교류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