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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비

[2013-07-22, 15:08:40] 상하이저널
상하이에 오래 살다 보니 장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가 많이 온다. 딱히 어느 시기가 건기다 우기다 구분할 수 없는 기후이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둘 다 비를 좋아한다. 습하고 끈적끈적한 상하이의 여름은 결코 즐겁지 않지만 ‘쏴 쏴“ 소리 나는 비는 시원해서 좋고,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운치 있어 좋고, 번개와 천둥이 번갈아 가며 쏟아지는 비는 엄마 품으로 파고 드는 아이의 따스함과 추억이 쌓여 좋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볼록하며 올라오는 따뜻함이 있다. 그리고 비를 떠올리며 혹여 좋은 추억 하나쯤은 있는 이들이 비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비를 좋아하게 된 데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자리한다. 비를 싫어하는 분들께는 일단 일방적 비예찬이라 양해를 구한다.

내 어릴 적 학교에 갈라치면 2km 남짓 되는 거리를 매일 걸어야 했다. 다행히 한 동네에 사는 동무들이 꽤 있어 심심치 않게 당연하게 초등학교를 다녔다. 문제는 비가 오는 날이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그 길을 따라 엄마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면 그 날은 운수 대통한 날이다. 다리 건너 길을 나서기 전 있는 튀김집에 들러 핫도그와 튀김을 꼭 사 주시기 때문이다. 가까운 데 사는 애들은 부모님 중 한 분이 우산을 들고 온다. 멀리 사는 애들이 반에서 절반이 넘고 농촌이다 보니 이렇게 엄마가 올 수 있는 날은 일 년 중 손으로 꼽는다.

하지만 엄마가 오지 않아도 우리는 씩씩하게 그 길을 걸어 갔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윗동네 아랫동네를 나누는 하천이 흐른다.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가방만 놔 두고 옷 입은 채로 냇가에 뛰어 든다. 걸어 오며 이미 젖은 옷, 마지막으로 신나게 물 속에서 물싸움도 하고 노는 거다.
 
그러고 집에 들어 서면 마중 나오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엄마는 물을 받아 얼른 씻겨 주시고, 옷을 갈아 입혀 주신곤 맛있는 부침개를 부쳐 주신다. 뿐이랴 비가 온 뒤엔 아랫 마을 영수네에만 있는 살구나무의 살구가 많이 떨어져 있다. 늘 간식이 고픈 시골 삶에 달콤한 살구는 최고의 간식이다.

이런 비가 달갑지 않은 일이 올해 일어났다. 언제 부터인가 집 보이지 않는 벽 틈을 타고 천정에서, 벽에서 물이 스며드는 걸 감지했다. 감지와 동시에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 벽은 일어나고 범위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맞은 편 상하이 이웃집도 상황은 비슷하였다. 마침 딸 결혼을 앞 둔 이웃이 먼저 리모델링을 하며 방수가 안 되어 물이 스며든 부분을 함께 공사를 하였다.
 
적지 않게 4개월에 걸쳐 공사하는 집을 지켜 보며, 시끄러운 소리를 참아 내며 우리집 공사 할 날을 기다렸다. 1주면 된다는 공사가 결국 대공사가 되어 한 달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꼭대기층이다 보니 꼭대기의 공중화원에서 물이 가장 많이 스며들어 화원 전체를 들어 내고 방수 처리를 하였다. 물이 스며 드는 벽을 보며, 공사하는 내내 비는 반갑지 않는 손님이 되었다.

다행히 건기가 딱히 없을 것 같은 상하이에도 3-4월은 비교적 비가 적게 와 한 달만에 할 수 있었다 한다. 공사가 완료 되고 내부 벽까지 다시 칠하고 나니 한 달 동안 참아 낸 보람이 느껴졌다. 다시 비를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맞은 편 이웃집이었다. 알고 보니 비가 샌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땜질 식으로 공사를 했단다. 결국 새롭게 리모델링을 한 집인데 다시 방수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6월, 상하이에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4월, 미루지 않고 제대로 한 방수 덕분에 새롭게 블록을 깔아 만든 꼭대기의 정원을 즐길 여유를 갖게 되었다. 우리 옆집 미키네(강아지를 키우는데 강아지 이름이 미키라 우리는 우리 이웃을 미키네라 부른다)는 다시 시작한 공사 때문에 정원이 모두 파헤쳐진 상태다.
 
비가 오락가락 하다 보니 공사도 계속 지연되고 있다.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지 않아 빨래 걱정에 오늘도 비가 오나 일기예보를 들여다 본다. 하지만 새벽에 들리는 쏴쏴 빗소리는 꿈 속에서 나를 어릴 적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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