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의 속도가 비례하게 느껴진다더니 벌써 올해 반이 훌쩍 지나고 후반기다. 누구나 새해가 시작되면 일년의 계획을 하고 또 그것을 생각하며 희망을 품고 꿈꾸곤 하듯 나 역시 몇 가지 계획이 있었고 지금 그것을 하나씩 짚어가며 1년의 반을 돌이켜 본다.
-매일 아침 나만의 ‘Quite Time’을 밤엔 일기를 쓴다.
-한 달에 적어도 3권 이상 독서한다.
-중국어 회화를 꾸준히 한다 등등.
1년 후 성숙해진 나를 기대하며 계획들이 몇 달은 잘 해나가는 듯 했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나에게 칭찬하고 격려하며….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선물이라며 스마트폰에 다운받아준 그 게임이 시작이었다. 평상시 퍼즐놀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 게임은 나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고 새벽까지 잠도 안자고 빠져들어 나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게 아니다 싶어 지웠다 다시 받기를 몇 번. 급기야는 남편의 핀잔에 마음 상하기도 했지만 어릴 적 엄마가 뜨개질에 빠져있을 때 아버지의 성난 소리가 겹쳐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한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다시 모으기가 쉽지 않음을 절실히 느낄 즈음 여행을 떠나게 됐다.
난 지금 동남아 여행 중이다. 20~30시간씩 기차를 타기도 하고 버스도 한번 이동할 때마다 기본 10시간 이상이다. 항상 시작은 설렘이지만 지칠 땐 잠시 힘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의 모든 일들에 나를 맡기고 그 시간조차 편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인생의 중간점검
지금껏 한번도 나를 이렇게 오랜 시간 돌아 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고개 들어 오랫동안 바라보고 또 밤새 Sleeping Bus에 누워 창 밖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까마득한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본다.
나의 어린 시절, 청소년, 청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자녀 그리고 오늘 난 나를 본다. 신은 나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셨구나.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하여 늘 목말랐고 만족하지 못했다. 입으로는 감사를 말했지만 숨어있는 욕심이 나뿐 아니라 내 주위를 힘들게 했구나로 이어지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여행을 하며 많은 여행객들을 보며 아주 어릴때부터 난 노년의 부부가 손잡은 모습을 좋아했고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떠올려진다. 각국의 젊은이들,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 연인, 친구들 그 속에 가끔씩 눈에 띄는 주름진 손 꼭 잡은 노년의 부부.
함께 늙어가며 당연하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범해 보이는 모습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진정한 동반자의 모습을 본다. 난 곁에서 걷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우리의 잡은 손에서 얼마나 서로의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부족함 조차도 감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여행의 막바지
이제 곧 상하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작심삼일이 되었다면 다시 작심하라고 누군가 그랬다. 사람들에게 마음여는 것을 느림보이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매사에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함이 늘 걸림돌이다. 이미 배어버린 습관을 단숨에 돌이키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아웅다웅 쫓기듯 살면 안된다는 걸 잘 안다.
소설가 박경리씨는 노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없다. 인생 후반기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모든 보이는 자연에서 배우며 더불어 자유롭게 살고 싶다.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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