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꿈에 불을 질렀다
일탈을 꿈꾸는 남자들의 아지트, 호텔캘리포니아 밴드
“그래도 이뤄가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꿈은 그런 거잖아요.”
젊은 날 간직했던 로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킨 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필자의 말에 되돌아온 호텔캘리포니아 밴드(이하 호켈)리더 이일재 씨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다. 이룰 수 없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요, 꿈은 꾼다는 것 자체가 실현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사회에 지칠 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읊조려보았던 ‘다 때려치우고 음악이나 할까’하던 꿈 같은 꿈을 ‘다 때려치우지 않고’ 실현시킨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로망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잊고 있었던 가슴 속 꿈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 호텔캘리포니아 밴드를 만나봤다.
밴드 연습장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골목 안에 감춰진 작은 공간. 작은 맥주바(Bar)의 이름 역시 호텔캘리포니아였다. 들어서자마자 드럼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의 각종 음향시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호텔캘리포니아는 단순한 연습공간이 아니었다. ‘늙으막에 놀이터 하나 만들자’는 마음이 맞은 이일재, 백인철, 성주호 이 세 명의 남자가 뭉쳐 부인들에겐 비밀로 하기로 하고선 오픈한 맥주바였다. 이 같은 호켈의 스토리에 이일재 사장은 “일단 일을 저지른거지”라고 표현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백인철 사장은 10년 전 업무 차 일본 출장을 갔다가 퇴직한 사업파트너가 열었던 비틀즈 바를 보고서 ‘나도 언젠간 저걸 만들어야지’하고 했던 다짐이 이렇게 이뤄졌다고 했다. 서로가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마음 또한 함께 맞았던 것이 4개월 전 오픈한 호텔캘리포니아의 탄생 비화였다.
꿈은 바의 오픈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들에게 맥주바의 수익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 우선 누구든, 언제든지 와서 연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고 싶어 자신들이 각자 구매한 악기들을 옮겨두었다.
이들은 회사 회식으로, 친구들의 이끌림으로 방문한 여러 손님들 중에서 노래를 부르고, 건반을 연주하고, 10년 전 동아리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해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모으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호켈밴드의 시작. 이들은 ‘파전과 막걸리’가 어울리는 남자들이 모여 김광석, 김현식, 이글스 등과 같은 7080노래를 즐긴다.
얼핏 보면 맥주바의 이름을 따 만든 것 같은 호캘밴드의 이름에는 상상 이상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7080을 즐기고 이글스와 호텔캘리포니아 노래를 좋아해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 밴드 역시 영화 ‘스타워즈’처럼 1탄, 2탄 밴드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고 백인철 사장은 귀띔했다. 크리스마스를 목표로 준비 중인 첫 공연의 엔딩곡은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다 하지만 다음 공연에선 또 다른 곡을 메인곡으로 정하고 그와 함께 밴드이름도 바꿀 계획이라는 것이다. 자유롭고 톡톡 튀는 그들의 발상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밴드에서 기타와 남성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유정윤씨는 누군가가 억지로 시킨 노래를 불렀다가 이일재 사장의 레이더에 걸렸다. 1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 전에 잡았었던 기타와 김광석을 닮은 보이스였지만 시간과 현실에 잊은 듯 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호켈밴드를 만나면서 다시 불태우고 있어 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처음 밴드 제의를 받고 망설였다는 베이스 담당 김승모씨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향해 손을 맞잡고 가는 호캘밴드의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고백했다. 사장님부터 밴드 구성원들의 열정에 나도 모르게 융화됐다고. 20년 만에 드럼스틱을 잡은 장창훈 씨 역시 회식에 끌려왔다 호켈 사장님께 캐스팅 된 케이스이다. 놓았던 악기를 잡게 만드는 분위기와 편안함을 호캘밴드의 매력으로 꼽았다
트럼펫과 색소폰, 드럼, 기타, 베이스로 이루어진 팀원 외에도 숨겨진 복병멤버가 있다. 바로 영상총감독. 연습장인 호캘에는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이들은 모든 연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서로를 체크해준다. 연습의 의미를 넘어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는 이일재 사장의 철학이 녹아있다.
현실과 바쁜 일상에 속에서 잊어버렸던 가슴의 불씨를 당겨주는 밴드, 호텔캘리포니아.
편안함과 자유로움,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알며 사는 멋진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나의 가슴 속에서 물음표가 일었다.
나는 어린 시절 무엇을 꿈꾸었던가? 내가 잊고 산 것은 없는가?
▷손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