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삼남매 다 출가하고 손주도 보고 네 아버지가 제일 걱정이다."
엄마가 편찮으시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그러시던 엄마는 꼭 2년을 힘드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 아니면 절대 사실 수 없으실 것 같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독립을 선언하셨는데 그 이유는 아들과 살게 되면 이제 가장인 아들에게 맞추고 살아야지 나에게 맞추라고 할 수 없다시며…. 우린 아버지 의견을 받아드렸고 언제까지가 될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홀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걱정은 완전 기우였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잘 하셨다. 어찌나 당신 관리를 철저히 하시는지 올케에게 우리 삼남매 중 아버님 닮은 분은 왜 없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5년은 아직 현직에 계셔서 가끔 가서 와이셔츠 다려드리고 이것저것 도와드렸지만 한번도 우리 누구에게도 속옷빨래 내놓으신 적 없구 언제부터인가는 어떤 것도 혼자서 해결하셨다.
식사문제도 아버지는 문제 없이 해결하셨다. 베란다의 화분에는 돌미나리, 방울토마토, 고추 등 각종 채소들이 잘 자라고 엄마의 선인장도 매년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내가 갈 때면 이것 저것 물으시고 노트에 꼼꼼히 적으시는 모습까지 난 그리도 엄하셨고 조용하셨던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살짝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름이면 오이지를 담으시고 가을이면 무말랭이를 만드시고 가르쳐드린 그대로 아버지는 잘 해나가신다.
매일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으시고 영어 단어를 찾으시고 독서를 하시고 적은 연금에서 조금씩 모아 도움의 손길을 찾아 당신의 마음을 전하시기도 한다. 한 달이 넘도록 안부전화 못드린 딸의 목소리에 반가워 하시며 감사하다고 나를 부끄럽게 하시는 아버지.
며칠 전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했다. 지난번 한국에 가는 지인 편에 마늘 장아찌와 봄에 만든 딸기잼을 보내드렸는데 아버지께서 맛있게 잘 드시고 있다고 좋아하시며,
"네 솜씨가 아주 좋구나. 네 할머니 솜씨를 닮은 게야"
난 잠시 어떨떨했다. 아니 왜 갑자기 할머니를? 할머니와 사신 세월보다 엄마와 사신 세월이 더 길었고 나또한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그땐 도우미 언니가 있어 나도 할머니 음식솜씨를 기억할 수 없는데 아버지는 왜 갑자기 엄마가 아닌 할머니를 말씀하시는 거지?
홀로 사신지 16년. 아버지는 초로의 노인에서 벌써 80을 훌쩍 넘기셨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도 내가 그렇듯 어머니가 그리우셨던 게다. 늘 표현은 서툴러도 할머니를 특별히 좋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려진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신 것 같다. 문득 나이가 들어도 부모와 자식은 변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구나 란 생각이 스친다.
남편도 가끔 엄마가 해주시던 새콤달콤한 쭈꾸미 무침이 먹고 싶다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 솜씨가 어머니만 못하다 생각해왔는데 그건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어머니가 그립다는 또 다른 표현이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
아버지가 그러시듯 나도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의 맛은 긴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 입니다. 저도 어머니의 맛이 그립습니다. 제 아이들도 훗날 언젠가는 제 맛을 그리워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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