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죽음의 이별일 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 동반하고 시간이 흘러도 메울 수 없는 허전함과 그리움을 가져다 준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보고 대화할 수 없고 웃을 수 없다는 현실이 맘 아프고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지난 한 달은 나에게 아픔 그 자체였다. 우연히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가 그날 새벽 동생이 중환자실에 있다는 믿기지 않는 소리를 듣고 무슨 정신에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달려갔다. 불과 이틀전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 힘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러울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각종 의료선들을 달고 누워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미어지는 가슴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지만 올케와 조카앞에서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보름,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신은 외면하셨는지 결국 동생을 불러가셨다. 오열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을 어찌 놓고 갈 수 있었는지 죽음은 참으로 매정하게 산자와 죽은자를 갈라놓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둘이 함께 데이트하며 늦도록 즐거웠고 매일 밤 딸아이 학원에서 돌아올 때면 강아지 안고 마중 나왔다던 남편과 아빠가 이젠 오래 오래 추억 속에 있겠구나 하니 두 모녀의 슬픔이 더 아리고 아팠다.
동생 본인도 우리도 모두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정작 가족들 앞에서 입관 시키며 뺨에 입맞추는 올케의 모습은 차마 바라보기 힘들었다. 동생은 올케의 의견대로 화장하고 '수목장'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올케의 말을 빌리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내 동생은 짧지만 정말 잘살았구나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한줌의 재로 흙에 묻혔다.
탁트인 산중턱 한 그루 나무 밑에 재 그대로 쏟아 부어 흙과 섞여 거름이 되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틀 후 다시 찾은 그 자리에서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고 동생을 회상하며 뜬금없이 작은 동생이 내게 말을 건넸다.
“누나, 예전에 누나 김소월님의 ‘초혼’ 많이 외웠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우리 모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마다 자기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느라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표정으로….
아, 이별과 함께 아련한 추억들이 스치고 지나니 사무치고 아프다. 이 가을 푸른 쪽빛 하늘이 서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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