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말에 시작된 나 자신과의 전쟁! “TV 드라마를 끊어 보자” 방학 때, 아니, 틈만 있으면, 아니, 아침에 일어나면, 아니,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한테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기가 무섭게 바로 TV를 켜는 아이를 쳐다보면서, 아이만을 탓하고 나무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TV가 언제부턴가 우리가족의 한 일원이 되어 눈 앞에서 늘 같이하게 되었다.
3살 때 이 곳에 오게 된 작은 아이를 위해 한국말을 깨우치게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비디오 테이프를 잔뜩 안고 왔었다. 그러다 또 한국말에 서투른 아이를 위한다며 스카이라이프를 달게 되었고, 그러면서 우리들은 TV앞에서 밥을 먹고 TV를 켜 놓은 채 대화를 하고, 가족간의 일체감을 드라마를 보면서 확인하면서 지내왔다.
방학 때면, 작은아이를 데리고 친정 아버지 집에 들른다. 늘 책과 함께 하시는 아버진, TV앞에서 지내는 우리 둘을 못마땅해하신다. 만고의 진리가 담겨 있는 책을 왜 안보냐며 잔소리를 하신다. 왜 너는 아이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안 들였냐고, 에미가 하는 데로 애들이 따라 하기 마련이라며 아이와 나를 같이 묶어서 못마땅해하신다. 아이는 잔소리하시는 외할아버지 집에 다시는 안오고 싶다며 투덜거렸다.
“할아버지가 출근하시고 난 뒤에 책 봤어요.”
“밤에 TV 보려구 낮에 오늘 읽어야 될 부분은 다 읽었어요.”
옆에 앉아있는 나로서는, 누구 편을 들어야 되는 건지…. 책을 습관처럼 손에서 놓아서는 안된다는 아버지 잔소리도, 아이의 불평도, 듣고 보면 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말문을 닫아버렸다.
“방학이라 좀 쉬게 하는 거예요” 핑계를 대본다. 그래도 막무가내신다.
“어허, 꼭 보고 싶어 하는 것만 한 두 개 정해놓고 봐야지, 저녁 내내 TV를 켜놓고 있는 게 말이 되냐”
그러다 우리가 떠나올 때면 미안하다. 내가 잔소리만 늘어놔서. 너희들 인생인데, 괜히 내가 참지 못하고 너희들 기분만 상하게 한게 아닌가 싶다며 미안해 하신다.
몇 년간을 아버지 잔소리를 무심히 넘기던 내가, 이번에 상하이에 돌아와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작은 아이와 나, 솔직히 TV에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말을 깨우쳐주겠다는,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그야말로 명분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당분간 TV를 보지 않으면서 견뎌 보기로. 그리고 어떤 식으로 TV를 곁에 두어야 할지를 고민해보기로.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금단 현상이 나에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가서 이 많은 시간을 뭘 하면서 보내지, 멍하니 서있기도 했다. 일종의 금단현상이 내 몸과 마음을 흔들어 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책을 손에 쥐어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내를 걷기 시작했다. 머리가 많이 맑아졌다. 아이는 날 따라다니며, 엄마, TV좀 보면 안되냐고 매일 한번씩은 졸라댄다.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대화가 안된다고. 못들은 척했다.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 동안 스카이라이프 카드는 내 지갑 속에 들어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도 절대로 TV를 켜지 않았다. 나자신이 아이보다 더 TV에 중독되어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일요일에 방영되는 오락 프로그램 할 때만 카드를 끼워준다. 아이는 정말 고마워한다. 불평불만이 많았던 지난 한 달을 아이는 어느덧 잊어버리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TV앞에 앉는다. 아이와 나는 TV의 금단현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이 스카이라이프카드가 언제까지 내 지갑 속에 있을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 우리 둘은 어느덧, 아이패드로 다운로드 받아 보는 TV프로그램 하나 만으로도 만족해하고 있다.
TV를 잘 절제하면서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려 한다. 아무런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으로 끝날지라도 견뎌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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