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저널 창간 14주년 기획
상하이•화동지역 우리 역사를 찾아서 - 역사문화인물 ⑨한국 최초 신부 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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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1821~1846) |
김대건 신부, 종교·역사적 의의 커
상하이는 한국천주교회의 중요한 모태공간이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두 신부,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신부(崔良業, 토마스)의 사제 서품 성당을 비롯해 최초의 외국인 신부이자 순교자인 주문모 신부의 성장지를 포함해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여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는 상하이에서 비록 2개월간 머물렀고, 한국에서의 전교 활동도 짧았지만 한국인 첫 신부로서 자기 신념(신앙)과 가치를 갖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에 종교적인 의미는 크다.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에서 과학, 서책, 실학적 서적들을 들고 들어오며 해외 문물을 배우고 돌아와 당시 사회적으로는 위험한 인물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 근대사적으로도 의의가 큰 인물이다.
1845년 한국 최초 신부 탄생
상하이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서품된 곳이다. 또 19세기 중반 이후 선교사들의 입국로였다는 점에서 한국 천주교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1842년에 마카오의 조선 신학교를 떠나 북상을 하던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이 조선 선교사 메스트르(Maistre) 신부와 함께 잠시 상하이에 머물렀다. 그 후 김대건 신부는 1845년에 조선에 입국했다가 같은 해 6월 4일 프랑스 선교사들의 영입을 위해 11명의 조선인 교우들과 함께 상하이로 다시 가서 이곳에서 약 2개월간 지냈다. 8월 17일 상하이 연안에 있는 진자샹(金家巷)성당에서 페레올(FerrEol)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8월 24일에는 상하이에서 약 30리 되는 헝당(橫塘) 성당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 한국 최초 신부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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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자샹성당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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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김대건 신부 기념경당 내부 |
1896년 천주교 박해, 김대건 신부 순교
1845년 8월 31일에 상하이를 떠나 당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충청도를 통해 입국에 성공한 그는 한양으로 잠입해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쳤다. 이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가의 금령을 어기고 출국한 사실과 천주교의 신부임이 밝혀졌다. 이 당시 조선정부는 그 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천주교 박해에 앞장서 왔던 풍양조씨의 세도가 막을 내리는 등 큰 권력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김대건 등의 옥사가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1846년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신부 3명의 처형을 따지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충청도 홍주 앞바다에 기항하고 조선국 정대감 앞으로 된 문책서를 전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크게 놀란 조선정부는 그의 처형을 결정했다. 김대건 신부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귀국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 순교했다. 그의 증조부, 조부 모두 천주교를 연이어 순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는 변함없이 천주교를 신봉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산중에 안치됐다.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열성적 전교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192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에는 교황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시 명동성당에서 성대한 의식이 거행 되어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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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경당 내부에 마련된 김대건 신부 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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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경당 내 김대건 신부 사진 |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이 마련된 金家巷성당
푸둥에 위치한 진자샹성당은 17세기 명나라 숙종(1628~1643) 때 중국 화동지역 최초의 성당으로 건립되었다. 또 한국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던 진자샹은 한국 천주교회로서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 사적지다.
당시 상하이지역 최초의 천주교 교인이었던 서광계가 자신의 집안일을 돌보던 김씨 가족들에게 땅과 집을 마련해주었는데 그들은 푸둥 진자샹에 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광계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김씨 문중은 이곳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진자샹성당이다.
진자샹성당은 한국인들에게 한동안 잊혀졌다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인들이 상하이를 방문하면서 진자샹성당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대건 신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한국 천주교의 중요한 유적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1993년 천주교 중국 상하이 교구는 한국 교회 순례자들을 위해 성당 부속 건물인 사제관 1층을 개조해 30평 규모의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기증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 석고상, 초상화 등이 모셔져 있다. 경당은 배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김대건 신부가 신학교육을 받기위해 한국에서 마카오까지 약 2100킬로미터를 항해한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현재의 진자샹성당은 상하이시가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옛 진자샹성당이 철거되면서 2004년 6월 다무즈광장(大母指广场) 옆에 1000여명 수용이 가능하도록 새롭게 신축됐다.
▷고수미 기자
<상하이 화동지역의 성지순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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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묘소가 안성의 기념경당(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1) |
[인터뷰] 푸둥 한인성당 김경훈 프란치스코 주임신부
1. 진자샹 성당, 어떤 의미를 지니나
푸둥 진자샹 성당이 김대건 신부와 관련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원래 성당은 2001년 철거됐고 현재 건물이 들어섰다. 이곳은 한국 후손들이 신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도 공간이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한다.
2. 상하이에서 김대건 신부와 관련
된 종교적 행사가 있나
-7월 5일은 김대건 신부 축일, 9월 20일 김대건, 정하상 바오로 등 한국 순교자 대축일로 가톨릭 신앙 인에게는 의미 있는 날이다. 대외적으로 선보이는 행사는 없으나 푸둥 한인성당에서는 9월 20일을 ‘본당의 날’로 지정해 자체 행사와 미사를 하고 있다.
3. 성지순례는 얼마나 다녀가나
-2010년 8월 22일 중국 종교국으로부터 푸둥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매주 한국어 미사를 집전하도록 승인 받았다. 이후 한국 가톨릭 대구 교구에서 2010년 9월 1일자로 신부를 파견하면서 한국 본당이 생겨났다. 2010년 9월부터 현재까지 1816명의 순례자가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푸둥 본당 사무실로 사전 연락해 성지 순례 신청서 작성자에 한함.)
4. 김대건 신부와 관련해 추진중인 사업이 있는지
진자샹 성당이 의미 있다고는 하다 기념 경당이 마련돼 있을 뿐 박물관처럼 자료나 사료 전시가 마련돼 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김대건 신부님 교육 영상물(5~15분 정도) 제작 추진 중이다. 한국교회사, 김대건 신부에 관한 강의도 준비 중이며, 엽서 등 기념품 제작도 구상 중이다.
▷손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