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저널 창간 14주년 기획
상하이•화동지역 우리 역사를 찾아서 - 역사문화인물 ⑨상하이 최초 한인 기독교 세례자 윤치호
上海서 기독교 세례자, 최초 근대적 지식인 ‘윤치호’
역사적인 논쟁이 분분한 윤치호는 상하이에서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은 한인으로 알려졌다. 상하이 중서서원(中西書院, 현 징링당 景灵堂)에서 수학한 그는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1887년 4월 3일 세례를 받고 기독교 감리교파 신자가 되었다. 그가 개신교 신자가 되게 된 배경에는 4년 여 되는 기간 동안의 개신교 연구와 수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 중서서원에서 공부
186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윤치호는 개항 후 부친이 개화파의 일원이 되면서 신사유람단 수행원의 신분으로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당시 나이 17세. 2년간의 일본 유학생활 중 영어도 배운 그는 미주한공사 통역으로 귀국해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갑신정변 실패 후 개화당에 소속됐다는 이유로 국내에 머물 수 없었던 그는 1884년 21세에 상하이 중서서원에 입학해 공부하게 된 것. 중서서원에서 3년 6개월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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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865~1945) |
일본에서의 중등교육, 상하이에서 3년 6개월, 이후 1888년부터 미국 밴더빌트 대학과 에모리 대학에서 5년간 대학 교육을 받은 윤치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 시대에 윤치호와 어깨를 겨룰 만한 인물로는 서재필과 유길준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선인 최초로 영어를 배웠던 그는 최초의 영어통역관이기도 했으며, 그가 60여년간 쓴 영어일기는 학문적 연구자료로 쓰이기도 했다. 또 이솝우화와 걸리버여행기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인물이기도 했다.
1895년 귀국 직후부터 그는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그는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들의 통역을 하면서 기독교 선교를 도와주었다. 1907년에는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일학교대회에 한국기독교대표단의 단장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1930년에는 YMCA 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기독교계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친일파·애국가 작사가 논쟁
노비석방, 독립협회 활동, 자강운동 조직 등 애국운동을 지속해오던 그는 105인 사건 주모자로 지목돼 6년간 수감되었다. 출옥 후 민족주의자였던 윤치호는 친일로 돌아선다.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황국신민으로서 일본에 충성하고 협력하겠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또 친일파의 소굴인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 자격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징병에 응하라고 권했으며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이 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만선일보>에 실린 윤치호의 친일논설이 확인됐고, 친일성향의 시 세 편(首, 北斗星, 前夜)이 친일 혐의를 받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광복 직후 그는 친일파로 몰리며 수시로 규탄과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또 애국가 작사가로 알려진 윤치호는 최근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가 아닌 ‘안창호’라는 주장이 일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창호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애국가의 가사를 변조한 ‘역술’ 출판물이 국내외로 흘러나가서 마치 윤치호가 작사한 것처럼 오도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최초의 근대인, 최초의 세계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상하이 교회
징링당(景灵堂)
상하이시 건축보호단위로 지정된 징링당의 전신은 1882년 설립된 중서서원이다. 이후 1924년 징린당(景林堂)으로 변경된 후 1980년에 징링당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송칭링 세자매가 모두 이 교회를 다녔으며, 송미령이 성가대로 참여했던 예배당이기도 하다. 또 1927년 이곳에서 장제스(蔣介石)와 송미령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후 1958년 홍커우구 연합예배장소로 지정됐으며, 문화혁명 기간 폐쇄됐다가 1979년부터 다시 예배당으로 회복되면서 이듬해 1980년 징링당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 현재 징링당은 1067㎡ 규모의 1500명 예배가 가능하다.
▶虹口区昆山路135号
▶021)6324-3021
국제예배당(国际礼拜堂)
국제예배당은 1925년 당시 상하이에 있던 외국사람들이 자금을 모아서 건축했다. 근대고딕식 벽돌과 나무로 건축된 근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상하이 최대 규모의 기독교 예배당이다. 1996년 6월 이후 매주 일요일 오후에 상하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예배가 열린다.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에 성대한 음악예배가 있다. 1763㎡ 의 상해국제예배당 내에는 1400여 좌석이 마련돼 있다.
▶주소: 徐汇区衡山路53号
▶개방시간: 일요일 07:30, 10:00, 19:00
무언당(沐恩堂)
무언당은 ‘주의 혜택을 받는다’는 뜻으로서 그 전신은 미국교회감리공회가 설립한 감리교회당으로 1887년에 건립되었다. 1931년에 벽돌과 나무를 이용해 신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무언당은 1989년 상하이시문물보호단위 우수근대건물로 공포되었다. 1958년부터 상하이기독교 각 교파가 여기에서 연합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약 1000명 수용이 가능하다.
▶ 黄浦区西藏中路316号
▶021)6322-5069
▶개방시간: 일요일 7:00, 9:00, 14:00, 19:00
홍더당(鸿德堂)
둬룬루문화명인거리(多伦路文化名人街)에 위치한 홍더당은 기독교 장로회 소속으로 원래 미국의 전도사였던 조지 피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상하이에 현존하는 유일한 중국전통양식의 기독교예배당이다. 중국과 서양양식이 섞인 홍더당은 상하이 근현대 우수건축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주소: 虹口区多伦路59号
▶개방시간: 일요일 07:00, 09:30
주성당(诸圣堂)
푸싱중루(复兴中路)에 위치한 주성당은 1925년 지어진 것으로 17세기 로마네스크양식(성공회 교회 양식)으로 지어졌다. 예배당의 면적은 1300여㎡ 이며 본당 약 500명 등 약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매월 넷째주 일요일 오후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예배가 있다.
▶주소: 卢湾区复兴中路425号
▶개방시간: 일요일 07:00, 09:30
▷고수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