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교민으로서 알아야 할 독립열사들
윤봉길(尹奉吉)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이자 시인이다. 본명은 윤우의(尹禹仪), 호는 매헌(梅轩)이이다. 매헌은 ‘찬바람을 뚫고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가득 퍼뜨리는 매화의 모습이 고결한 인품을 가진 군자의 풍모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윤봉길 의사는 청년 시절 농민 운동에 관심이 많아 농촌계몽활동, 농촌부흥운동, 야학 활동, 독서회운동 등에 참여했다.
1930년에는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还)"이라는 글귀를 남기고 집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国务领)인 김구를 찾아,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4월 29일 김구와의 협의 끝에 윤 의사는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리는 일왕의 생일연을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将介石)는 홍커우(虹口) 공원에서 윤봉길이 폭탄 투척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했고, 장제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윤 의사는 폭탄 투척 직후 체포, 곧바로 헌병으로 넘겨지면서 보다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金泽)에서 총살당했는데, 시신이 아무렇게나 수습돼 가나자와 노다산(野田山)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 밑에 표식도 없이 매장되었다. 사형 집행 전에 미리 파 놓은 2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시신을 봉분도 없이 평평하게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윤봉길 의사가 수뇌부를 섬멸시킨 데 대한 일제 군부의 복수와 대우였다.
기타 상하이 독립열사
김구(1876,고종 13년~1949)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초대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등을 역임하는 한편, 1928년에는 한국독립당을 조직, 총재가 됐다. 199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 나라가 광복된 후에도 완전 자주독립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서거했다.
이봉창(1900~1932)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약한 젊은 독립운동가. 용산 일대에서 금정청년회를 조직 간사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당시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김구의 지시를 받고 일왕 히로히트를 암살하기로 결심, 일본으로 건너가 그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됐다. 그후, 조사과정에서도 배후 인물인 김구의 신원을 끝까지 밝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위해 투쟁하다 비공개재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안창호(1878, 고종 15년~1938)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 민중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와 상하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아 독립운동방략을 작성하고 연통제를 수립, 각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상하이 소집 등을 실행했다. 그는 청일전쟁, 안중근 이토히로부미 암살사건, 윤봉길 상하이 홍커우 폭탄사건 및 동우회 사건 등에 깊이 관련,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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