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중심가에서 볼일을 보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가 귀찮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딸아이랑 둘이서 911버스에 올라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딸아이는 상하이에 처음으로 관광이라도 온 듯,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와~ 저 건물은 정말, 중국적인데? 어디서 또 저런 장면을 찍을 수 있겠어? 어? 저런 건물도 있었었나? 신기한데, 저걸 왜 못봤었지?”
옆에서 재잘거리며 계속 찍어댔다. 나도 덩달아 창 밖을 내다봤다. 오랜만에 천천히, 찬찬히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눈에 담아봤다. 오늘은 작은 아이도 학교에서 늦게 오는 날이고, 저녁준비가 급하지 않다는 걸 확신하면서는 마음속에 풍경들도 여유롭게 다가왔다.
10여년 전에도 이 911 버스는 치신루(七莘路) 완커(万科)에서 예원까지 운행됐다. 그 당시 완커에 살았던 우리들은 이 911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사는 곳이 버스 종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2층 버스인지라, 우리 아이들은 2층 맨 앞 좌석에 앉는 걸 무척 좋아했다. 난 살짝 무섭긴 했지만. 그 당시 버스엔, 버스 차장이 있었다. 주로 여자였었는데, 버스 안의 왕이었다. 지금은 방송도 나오고, 전광판도 뜨지만, 그 당시엔 버스 차장에게 서툰 중국말로 내려야 될 곳을 미리 말해두고는 언제 불러 줄려나 쳐다보고, 또 쳐다보곤 했다.
이렇듯 우리들은 이 911 버스를 타고 동물원도 가고, 상하이 도서관 앞에도, 시내 중심가에도 가곤 했다. 우리 가족에겐 상하이의 버스라곤 이 911 버스가 전부인양, 제일 친숙했었다. 우리 가족이 여기 상하이에 여전히 살고 있듯, 이 버스도 오늘도 여전히 같은 길을 오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사실, 그 당시엔 주말마다 난징루(南京路)나 동물원, 식물원을 찾아边다녔다. 둘째가 아직 많이 어려서 집안에 박혀 있기엔 너무 갑갑해서 무조건 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 여기저기로 걸어 다니곤 했었다. 햄버거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귀하디 귀하던 시절이라 시내에 나가서 이것들이라도 먹고 오면 기분이 한결 업 되는 것 같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지금은 난징동루(南京东路) 뿌싱지에(步行街) 꼬마 열차도 작년까지만 해도 2~3위안 했던 것 같은데, 5위안이나 한다. 지난 주말에 쌀쌀한 날씨를 핑계삼아 올라 타니 3명에 15위안을 내라고 한다. 세상에나 전철비보다 더 비싸네….
난방도 안되고 창문도 제대로 안닫혀서 밖에서 찬바람이 그대로 새어 들어오는데, 서비스는 하나도 개선된 건 없는데, 가격만 올랐네. 투덜거리면서도 우리들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를 서로들 마음속에 되새겨 보면서 감히 내려볼 생각들은 안했다. 이곳에 이렇듯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집을 나서면 이렇듯 또 우리들은 이곳은 스쳐 지나가는, 계속 머물 수 없을 거라는 무의식이 우리들을 관광객의 마인드로 되돌아가게 한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풍요로워졌다. 한국식품도, 옷도, 책들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해 보이지가 않는다. 한국의 것들이 너무 많아 우리들이 사는 이곳이 도리어 중국인들에게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시원한 콜라도 드물었었는데, 미지근한 콜라가 주는 그 이상한 느낌들은 어느덧 다 사라져버렸고. 까르푸에서 잠옷에 하이힐을 신은 아줌마들에게 보내던 민망하기 그지없던 눈길도 어느덧 사라져가고 있고….
버스 길을 따라 생긴 전철역들, 길을 따라 재정비된 건물들, 그사이 훌쩍 커버린 나무들. 외관은 많이들 변했어도 오랜만에 버스에서 내려다본 내 마음 속 상하이 풍경들은 그다지 많이 달라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이곳 상하이에서 우리 아이들은 분명 훌쩍 커 버렸고, 나도 그 세월 속에 묻혀 이곳에 처음이었던 시절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만나는 911 버스, 나와 우리 아이들에겐 삶의 한 장면으로 찍혀있다. 2층칸 맨 앞 좌석, 우리들의 자리였다. 거기서 눈에 담았던 상하이의 풍경이 우리들을 꽤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었었다. 오랜만에 타 본 911 버스, 옆자리에 재잘거리는 딸아이가 있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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