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인천공항에서 서울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가 본 것은 새카만 재로 남은 남대문이었다. 뉴스에서 본 것보다 더 놀라웠던! 까맣게 타버린 남대문. 그 모습은 5살 딸아이의 기억에도 남아있다. 지금도 남대문에 대한 얘기를 하면 새카만 남대문도 꼭 얘기하는 아이에게 난 미안했다. 미안하다. 숭례문, 우리나라 국보1호의 모습을 그렇게 기억하게 해서 .
2010년 차가운 봄비 내리던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날리던 노란 리본도 보았다. 대통령이 사는 마을을 구경하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대통령은 어디에 계시냐고 궁금해 했다. 어디에 계시다고 해야 하나. 시민들의 서거1주년 추모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으로 그린 대통령 얼굴 모습 앞에 촛불을 밝히며 말하지 못함에 미안했다.
서울과 상하이의 거리 820 킬로미터. 10년이란 48,300시간을 해외에서 살면서 한 번도 내 나라를 잊은 적은 없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세월호를 탄 아이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싶다. 내 나라에서 교육받고 일하며 세금도 내고 투표도 하며 국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내일의 주인’을 수장(水葬)하는 대한민국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꼭 가고 싶었던 공개방송에 당첨이 안 되어 아쉬워했던 특설무대는 무너진 삼풍백화점이었고 결혼준비를 하며 병풍을 맞추기 위해 타고 다녔던 지하철 참사가 대구에서 일어났다.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고 지인들이 사고를 겪기도 해 지금도 고통과 악몽의 진행형 삶을 근근이 살고 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어린 딸의 웨이신(微信, 중국판 카카오톡)엔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딸이 다니는 로컬학교에서는 노란리본의 유래를 담고 있는 팝송‘Tie a yellow ribon on an old oak tree’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노래는 오랫동안 복역하던 남자가 드디어 수감을 마치게 되자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면 마을 입구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멀리서 보고 리본이 없으면 그냥 떠나겠다고. 남자가 탄 버스가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나무엔 노란 리본이 뒤덮여 있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세월호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배웠다고 한다. 어른으로 살며 가슴에 두 번째 노란 리본을 달게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다시 생각해본다. 기적이 아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어른, 진정성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무엇이 모자랐는지를.
"무심하게 피어있는 봄꽃들 사이로 바다에 갇힌 아이들을 기다리는 노란 리본의 간절한 행렬을 쫓아오다 보면 팽목항에 당도 합니다“
더불어, 먼 훗날. 세상에 남아 노란리본 가슴에 달고 찾아간 못난 어른들을 용서해주기 바란다고.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Betty(fish7173.blog.me)
<덧붙임>
피카소는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1950년 한국전쟁으로 민간인이 무참히 학살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피카소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고 한다. 피카소는 흑백으로 해체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 인류에게 인간의 무차별한 폭력성을 고발하였다. 이 참혹한 그림이 2014년 4월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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