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남편을 따라 상하이에 와 우리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지도를 펴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상하이의 끝자락 칭푸(青浦)였다. 단지는 조용하고 조경이 안정된 주택이었지만 담 하나 너머엔 다닥다닥 판자집들과 아침 일찍 가래를 뱉는 소리로 시작하는 가난한외지인들이 모 여사는 그야말로 극과 극의 생활모습이었다.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와 수도도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생활을 하며 열심히 돈벌이를 하는 억척스런 모습들과 길가에 하나 있는 문 없이 낮은 칸막이만 있는 공중 화장실의 아찔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해가지면 몇 개의 가로등이 희미했고 적막했지만 아침이면 새벽부터 시끌벅적 아이들의 등교와 출근 ‘정말 중국은 아침형 인간들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에서 늦은 밤 문화와 비교를 하곤 했다.
아무튼 예전 한국의 힘들고 각박했던 때와 비슷한 환경이 살짝 향수를 불러 이르킬땐 어릴 적 친구들과 이웃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때가 나의 어린 시절이라 어른들과 달리 온통 정겹고 즐거운 추억이 가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에 가면 정겨운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한가로이 단지에서 산책도하고 이렇게 5년을 살다가 아이들이 커가며 우린 이사를 했다.
‘칭푸아줌마’에서 ‘강남아줌마’가 되었다. 강남아줌마의 생활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사실 슬슬 칭푸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을 즈음 교민이 많이 모여 사는 강남에서 맘껏 우리말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오랫만에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하며 어쩌면 내 나라의 그리움을 대신한 것도 같다.
언제부턴가 강남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k-pop의 한류영향으로 처음엔 주말이 북적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평일 주말 구분없이 마치 성지 순례하듯이 밀려오는 중국인들로 동네가 시끄럽고 밤늦도록 자동차 경적소리가 집에서 쉼의 의미를 흐리게 했다.
"우리 이사할까?"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주위상가가 활성화되니 시끄럽고 집세도 터무니 없이 오르니 밀려서 가기 전에 내가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뜻은 물론 알고 이해하지만 강남 아줌마로 이미5년 편한 것에 익숙해 버린 난 꼭 그것이 최선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남편의 생각은 굳었고 나도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해 우린 이사하기로 했다.
다시 난 칭푸 아줌마가 됐다.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귀향하듯이. 시장의 과일가게 아줌마 채소가게 아줌마 그리고 낯익은 얼굴들이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열심히 살고 있고 집도 장만했다며 기뻐한다.
쓰러질 듯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이 있던 곳은 아파트가 들어섰고 예전에 구베이까지 운행하던 단지 빤차(班车)는 새로 개통된 지하철역까지 매시간 운행하는 걸로 바뀌었다.
난 집 앞 작은 공터에 고추랑 토마토 묘목을 심고 오늘은 강남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찾아와 뒷마당에서 숫불을 피워 함께 고기를 굽고 감자랑 옥수수도 구우며 모처럼 큰소리로 웃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줌마로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를 바꿔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길 잘했다. 난 또다시 칭푸아줌마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기대되고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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