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8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에게 졸업식 날 깜짝 선물로 부모님이 주시는 편지를 전달하고 싶으시다고, 6월초까지 학교에 아이 몰래 전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 정말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네. 꼭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서일까, 시간을 내서 써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벌써 6월초가 되어 버렸다. 평상시에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도 했는지 종이 위에 옮겨 적으려니 이미 아이한테 다 한 말들이라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편지 한 장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결국에는 평상시에 아이에게 했던 말, 엄마가 아이에게 바라는 점, 졸업 축하한다, 고등학생이 되니깐 좀 더 열심히 공부하자는 말, 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말 등등 틀에 박힌 얘기뿐이다. 이건, 깜짝 선물이 아니라 잔소리를 영구 보존시키는 문서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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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늘상 같이 지내다 보니 편지에 담을 내용이 너무 형식적이었을까?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온통, 건강, 고등부, 열심히 공부, 미래를 위한 준비, 친구들하고 학교생활 재미있게 하고, 다양한 친구들과 사귀어도 보고 등등… 감동을 줄 수 있는 편지를 써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도 내 자신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삶 자체를 살고 있지를 않아 어려웠다. 솔직한 엄마의 마음을 담기도 쉽지 않았고. 아빠한테도 이 기회에 아들에게 편지 한 통 쓰라고 권유했더니, 자기는 평상시에 아들한테 할 말 다 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할 말이 없단다. 참으로 그렇다. 편지란 이렇듯 어렵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몇 장을 써도 모자랄 지경인 것 같은데 정작 글로 표현하자니 실로 부담스럽기만 한 것.
4년 정도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한 일본친구가 졸업하면서 완전히 귀국을 하게 된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 친구의 집에서 차려주는 일본식 음식을 먹고는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집에 돌아와서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영원히 이별할 지도 모른다면서 무슨 중요한 미션이라고 맡은 양, 주말이면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별 연습을 하는 건지, 추억을 더 만들려고 하는 건지…. 어쨌든 졸업을 핑계 삼아 열심히 어른 흉내들을 내고 있다. 조금은 가소롭기도 하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자기들 또래의 문화이려니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아이는 계속 졸업 예행연습을 하고 있고, 그 기간이 좀 길 뿐이고, 이 달 말 경이면 졸업식이 끝나게 되어 있으니깐.
‘사랑하는 내 아들 00에게’ 에서 ‘사랑하는 00엄마가’로 내 얘긴 끝이 났다.
편지를 읽고 난 뒤의 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엄마와의 그 동안의 많은 얘기가 그 아이의 머리 속에도 똑 같이 남아 있진 않을텐데… 품에 쏘~옥 안기던 아이가 이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쑤~욱 커버렸는데, 울퉁불퉁한 팔뚝 근육을 자랑스레 내미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 자꾸 낯설어지기만 하는데, 방에 들어가면 꾸린내(?)는 또 얼마나 나는지, 환기시키느라 창문을 열면서, 옛날 남동생 방 문을 열면서 엄마가 하시던 말들을 내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아휴, 냄새야! 창문 좀 열자!”
엄마는 엄마이고 아들은 여전히 아들로 남아 있는데, 우리들의 모습과 생각과 감정의 끈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낯설어져 가는 아들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딸아이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내 편에 서주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덜하건만, 아들은 왠지 자꾸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아들은 알까? 아들이 자꾸 어른이 되어감에 엄마는 조금씩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그러나, 그러나, 아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뿌듯하다. 아들아! 졸업 축하한다! 엄마의 편지가 잔소리뿐일지라도 너에게 소중한 하나의 보물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