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한국 사회에 너무나 잔인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세월호에 이어 임병장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윤일병 사망 사건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삼 년 후면 군대를 가야 하는 아들을 둔 지라 더구나 남의 집 일로 치부할 수도 없었고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청년들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극악한 행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다 뒤늦게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을 접하고는 정말 말을 잃고 말았다.
열 다섯, 열 여섯의 아이들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뿌려달라는 친구에게 끓는 물을 들이붓기까지 했단다. 결국 그 친구는 차량 뒷 좌석에 방치된 채 죽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광기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걸까. 이 사건들의 가해자들이 특별한 이상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일까.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짐바르도 교수는 개인적 요인으로서의 사람, 그가 처한 상황, 이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유지하는 시스템이라는 세가지 차원을 고려한 실험을 했다. 결과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이나 시스템에 처하면 악한 행동을 가책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적극적으로 악을 주도한 사람들도 있으나 그런 가학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거나 방관함으로써 ‘행동하지 않는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악’이 더 뿌리깊게 확산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악의 평범함’에 대한 이런 인식은 나치 전범들이 다 악마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지만 집단에 순응하며 자신의 행동을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파한 한나 아렌트의 의견과 상통하는 것이다.
나는 임병장이나 윤일병, 여고생 사건들에 관계된 사람들 안에서 짐바르도 교수가 말한대로 악을 저지르게 되는 상황을 창조해내는 시스템(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특정 개인이든 사회나 집단의 문제든 상관없이)과 한나 아렌트가 간파한 ‘악의 평범함’, 즉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 관계 속에서 사유하지 않고 순응함으로 악을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악을 저지르거나 참여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면을 본다.
물론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가해자들이 극악무도한 범죄자겠지만 그들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고, 대부분 한편으론 평범하게 일상을 꾸려나갔던 사람들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사실은 나도 얼마나 많은 악에 대해 수수방관하며 살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아픔과 필요에 눈감고 살고 있는가. ‘행동하지 않는 악’으로 ‘행동하는 악’을 방조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악이 봄날 민들레 홀씨처럼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흩날려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유’없이는 나 자신도, 그 누구라도 결코 악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이기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가 이 순간만큼은 참으로 똑같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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