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판다’…. 중국 외교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요즘 여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가오톄(高鐵) 외교’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치면 ‘고속철도 외교’다. 이런 식이다.
지난달 17일 브라질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획기적인 제안을 하나 내놨다. 브라질 동부와 페루 서부를 잇는 ‘남미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자본과 기술을 상당 부분 책임지겠다’는 말로 두 나라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파나마 운하를 피할 수 있는 묘책’이라는 환호가 중국 언론에서 터졌다. 중국 고속철도는 그렇게 ‘미국의 앞마당’을 파고들고 있다.
‘가오톄 외교’의 선봉에 선 사람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다. 그는 지난 5월 아프리카 순방길에 나이지리아•케냐 등과 철도 건설 협약을 맺었고, 영국 방문(6월)에서는 런던~버밍엄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문의 최대 현안 역시 고속철도였다. 동남아 각국을 중국발(發) 철로로 묶겠다는 게 중국의 계산이다.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까지…. 중국 고속철도가 빠르게 뻗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외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정부의 자금 지원이 따른다. 중국은 최근 개통한 터키의 앙카라~이스탄불 고속철도 사업 참여를 위해 약 7억5000만 달러의 저리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가오톄 외교’의 본질은 경제력이었던 셈이다. 중국 언론은 ‘정화(鄭和)식 외교 전략’이라고 말한다. 정복한 나라에 황제의 하사품을 주고, 그 나라 특산물을 가져왔던 명(明)나라 제독 정화의 접근 방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경제적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의 매력 공세에 빠지면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고, 결국 정치적 종속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미얀마는 최근 중국 쿤밍(昆明)과 미얀마 서부 해안을 잇는 철도 공사를 중단시켰다. 중국의 경제 침투가 위험 수준에 달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믈라카 해협을 통하지 않고 인도양에 닿으려는 중국의 전략은 무산될 처지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달 청와대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3개 경제 보따리를 풀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한•중 FTA 연내 체결, 한국에 위안화 역외금융 센터 설립 등이다. 우리의 필요도 있지만, 한국을 자국 경제 질서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강한 제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AIIB의 경우 우방인 미국의 입장과 배치돼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경제력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가오톄 외교’가 이미 우리 정치•경제에도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의 25%가 중국으로 갈 만큼 대중 의존도가 높다. 중국이 기침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독감에 걸리는 구조다. ‘가오톄 외교’의 속성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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