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저우(杭州) 출신의 에드먼드 자오는 지난해 포르투갈의 해안가 휴양지 에스토릴로 이주했다. 50만 유로(6억8천만원) 이상의 현지 부동산을 사면 딸려 나오는 거주비자를 이용해서다.
그는 "중국에 있을 땐 하루 16시간, 주 7일, 연 365일을 꼬박 일했는데 그렇게 10년만 더 살면 번 돈을 다 병원비로 쓸 것 같았다"면서 "여기선 오후 6시만 넘으면 휴대전화를 끈다. 아무도 나를 찾을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의 대가로 거주비자를 내주는 유럽국가들의 이른바 '황금비자' 제도에 자오와 같은 중국인 자산가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포르투갈에선 유럽연합(EU) 외부인이 50만 유로가 넘는 부동산 투자를 하면 5년짜리 거주비자를 준다. 2012년 10월 제도 시작 이래 1천360건의 황금비자가 발급됐는데 이 중 81%인 1천100건이 모두 중국인이다.
비자를 받으면 EU 회원국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며 비자 만료 시점엔 영주권도 신청 가능하다. 이 제도에 9억 유로(1조2천243억원) 부동산 투자자금이 몰리며 재정위기 여파로 침체했던 포르투갈 부동산 시장까지 꿈틀대는 상황이다.
포르투갈뿐 아니라 헝가리는 자국 국채에 25만 유로(3억4천만원)를 투자하면 황금비자를 준다. 키프로스는 30만 유로(4억800만원), 그리스는 25만 유로 이상의 부동산을 사면 된다. 몰타에선 액수가 22만 유로(2억9천900만원)까지 내려간다.
라트비아, 스페인 등 재정난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이런 제도를 운용 중이다. 스페인의 경우 현재까지 발급된 황금비자 134건 중 3분의 1이 중국인이며 신청자 수가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다만, 황금비자를 노리는 중국인 자산가 상당수는 EU 영주권보다는 중국에서의 만일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플랜B'로서 비자를 신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FT는 전했다.
중국인에게 100여 채가 넘는 포르투갈 부동산을 팔았다는 한 중개인은 "이들의 구매는 본국에서 뭔가 잘못됐을 때 바로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오기 위한 것"이라며 "탈출로를 사는 셈"이라 말했다.
이 같은 중국인 자산가들의 '러시'에 유럽 정치권 일각에서는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포르투갈 정치인은 "돈을 받고 시민권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제도가 EU의 가치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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