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기분 좋은 차가움이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며 가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해에서는 길지 않은 가을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요즘은 가까운 거리뿐만 아니라, 여름이었다면 택시를 타고 다녔을 법한 거리도 열심히 걸어 다닌다. 지인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걷는 기분이 참으로 행복하기까지 하다. 한국처럼 예쁜 단풍이나 수북한 낙엽은 없지만, 그래도 차가운 바람과 맑고 따뜻한 햇살에서 계절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남자의 계절, 독서의 계절 등등 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지인과 수다를 떨며 걷던 중, 지인이 나에게 묻는다. ‘수포대포, 영포직포, 중포미포, 독포인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순간 머릿속을 뒤적이며 내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를 떠올려본다.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말인지 되묻는다.
말인즉 ‘수학을 포기하면 대학을 포기해야 하고, 영어를 포기하면 직장을 포기해야 하며, 중국어를 포기하면 미래를 포기해야 하고, 독서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해야 한다.’라는 뜻이란다.
‘허허허, 거 참, 말들도 잘 만들어낸다’라는 생각과 ‘살아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을 만들어내나 싶어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이 새로운 사자성어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인터넷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새로운 사자성어가 아닌가!
수포대포(數抛大抛) - 수학을 포기하는 것은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영포직포(英抛職抛) - 영어를 포기하는 것은 직장(입사)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독포인포(讀抛人抛) - 독서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수포대포, 영포직포, 중포미포는 요즘 세상을 대변하는 말인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했다. 이 말들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생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중국어까지 공부해야하는 직장인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그 중 ‘독포인포’라는 사자성어는 내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예전에는 나름 책읽기를 좋아하던 ‘문학소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내 생활을 돌이켜보니, 내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아침부터 늦은 밤 잠들기 전까지 들려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이가 들면서 온화해지거나 인자한 모습을 지닐 것이라는 나의 엣 상상과는 달리, 요즘의 내 모습은 부끄럽게도 작은 갈등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지식 습득이나 오직 공부를 위한 독서만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책 속의 아름다운 글귀나 인물들을 통해 위로 받고, 용기를 얻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인생이란 배움의 연속이다.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도록 노력하며 인생을 포기하거나 방치하는 사람이 아닌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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