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서해다. 이번에는 불법조업 단속 과정에서 중국 선장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가장 관계가 좋다지만, 불법조업 문제는 끊임없이 양국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어디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1년 전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행보를 복기해보자. 지난해 9월 초 중앙아시아 ‘스탄’ 국가 순방에 나선 시 주석은 카자흐스탄 방문(7일)에서 ‘실크로드 경제벨트(经济带)’ 구상을 내놨다. “중국~중앙아시아를 잇는 띠(带) 모양의 경제 회랑을 만들어 협력하자”는 제안이었다. 한 달 후 동남아로 날아간 그는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10월 3일)에서 ‘21세기 해양 실크로드(丝绸之路)’ 구축을 제기했다.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에 달하는 해상 교역 길을 열자는 구상이었다. ‘하나의 띠와 하나의 길(One belt, One road)’을 뜻하는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띠길(带路)외교’의 시작이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순방을 마친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24일 정치국 전원과 주요 지방 지도자를 베이징으로 불렀다. 주제는 주변국 외교. 이 회의에서 ‘친(親)•성(誠)•혜(惠)•용(容)’이라는 외교 노선이 발표됐다. 주변국과 ‘친하게, 성심을 다해, 서로 혜택을 나누며, 포용하는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친•성•혜•용’은 결국 ‘띠길 외교’를 실현하기 위한 철학적 포석이었던 셈이다.
지난 1년 시 주석은 주변국을 드나들며 ‘띠길 외교’ 세일즈에 나섰다. 한국과 몽골을 단독으로 방문했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서남아시아를 돌았다. 작은 섬나라인 몰디브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 포인트였기에 순방국에 포함되기도 했다. 시 주석은 가는 곳마다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풀었고, 상대국과 인프라 건설, 에너지 공동개발 등의 협약을 맺었다. 한국에서는 ‘띠길 외교’의 한 축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띠길 외교’에는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에 맞서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이’라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전략도 담겼다. 그럼에도 이 정책은 여러 주변국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중국과의 에너지 투자협력(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항구 공동개발 협력(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이 이어지고 있는 게 이를 말해준다. AIIB에 가입하겠다는 나라도 늘고 있다. ‘친•성•혜•용’이 먹히고 있다는 얘기다. ‘수교 이후 가장 좋다’는 한국과의 관계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터다.
서해 불법조업 단속 과정에서 중국인 선장이 사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확한 조사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법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다. 불법 조업선이 항구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이는 당연히 중국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다. ‘친•성•혜•용’이라는 ‘띠길 외교’ 철학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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