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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하나 아닌 하나

[2014-12-17, 18:18:52] 상하이저널

 

중국에 온 후 처음 만난 이 땅 사람은 조선족 도우미 아줌마였다. 상하이에 온 첫 날 낯선 집에 들어섰을 때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또 내게 있어서 아줌마의 존재는 단순한 가사 도우미가 아니라 국사책에서 읽었던 고난의 역사를 담지한 선조의 후손이자 동포였고 한민족이었다.

 

하지만 왜 그리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던지 매사가 쉽지 않았다. 조그만 일에도 민감해지고 자존심상해 하는 아줌마를 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고 만사에 비교의식을 드러내는 감정 상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낯선 이 땅에서 한 핏줄로 통할 것이라는 감격과 기대로 시작한 만남이 뭔가 큰 벽이 가로놓인 것 같은 불편한 경험 속에서 끝나버렸다.


3, 4년 후 한 조선족 청년과 잠시 교제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베이징의 유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기업에 취업,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중간 관리직에 있던 참이었는데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특히 조선족들에게 큰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젊음을 바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 그 위치에까지 올라보니 바로 한계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조선족으로서 한국 기업에서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 능력껏 일했지만 동료 한족들은 언어가 통하니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시기에 찬 시선을 보내는 등 안팎으로 괴롭다는 것이다. 한국인들과도 완전 섞이지 못하는 어중간한 관계로, 한족들에겐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으로 자리매김되는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까지 겪고 있다며 힘들어했다. 한국에서 교육받는 시간에 조선족을 당연히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말에는 반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중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능력껏 일하며 살고 싶은 젊은 청년의 고뇌를 보면서 이들이 겪는 이중적인 고통 그리고 한국인들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깊이가 느껴졌고,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 실체로서의 조선족은 누구인가라는 거창한 화두를 떠나 나름대로 내린 현실적인 결론은 이들을 절대로 한국인으로 규정하고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현주소는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고 삶의 터전은 중국사회이다. 연변 자치주의 해체 위기는 바로 이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태어나고 살아온 이 땅에서 성공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변방이 아닌 주류 사회의 중심에 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에 대도시로 이동하고 자녀들을 한족 학교에 보내며 소수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현주소를 인정하고 훌륭한 파트너로 삼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들을 향한 충분한 존중과 배려, 희생없이 멋대로 이등 한국인 같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주지는 않았는지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박춘봉사건으로 떠들썩한 가운데 타향아닌 타향에서 수많은 조선족들의 어깨가 더 움츠러드는 건 아닌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구름에 실린 달팽이(geon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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