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공감 한 줄]
백년 전 효자를 죽인 불효자
카프카의 ‘변신’
프란츠 카프카 | 이재황(옮긴이) | 문학동네 | 2005-07-30
| 원제 Die Verwandlung(1916년) |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서 사업을 위해 상경했을 때의 일이다. 당장에 얻을 집이 없어서 급하게 고시원으로 입주를 했다. 고시텔이라고 고시원과 호텔을 합한 그럴싸한 구조였다. 일단 방안에 샤워실과 좌변기가 있었고 침대와 장롱, 책상, 피씨방의자. 냉장고, 에어컨까지 구비되었으니 호텔이 맞다. 혼자 상경했으니 지내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방을 나오면 다용도실에 세탁기와 조리기구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편하고 좋은 것은 청소였다. 물티슈한장이면 방청소가 끝났고 두장으로는 구석구석 대청소까지 할 수 있었다. 길이 3미터에 너비 2미터가 전부이니 가능했다. 그 안에 열거한 모든 것들이 있다 보니 말이다. 방바닥이라고 해봐야 정사각으로 1미터가 전부다. 좁다는 느낌보다는 꼭 필요한 만큼의 실속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며칠간이었다. 50살이 더 가까운 40대 나이로 서울의 고시원생활을 이토록 뻔뻔하게 둘러댈 수도 있나!
빨리 집을 얻어야지 하면서도 날마다 새벽퇴근에 새벽출근이 반복되는 창업초기, 금요일 밤이면 지방의 집으로 내려가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출근하니 그냥 지낼 수 있었다. 잠자고 씻는데 지장이 없었고 밥은 모두 사먹었으니 서둘러 집을 얻으려고도 안했다. 한겨울에 1인용 침대 위 전기장판속은 뜨끈한 천국이었다.
오마이가뜨! 아직도 찬바람이 가지 않았는데... 퇴근 후 불을 켜자 설국열차에 나오는 보양식이 그 넓은 방 중앙에 배를 위로 하고 발짓을 하고 있다. 사람이외에는 모든 동물들에게 눈길로는 정을 주지 못하는 내가(물론 입으로는 많이 사랑하는 몇몇의 땅위, 물속, 하늘의 동물들도 있다. 그 역시 살아있을 때는 눈과 손으로는 보기도 싫어하고 만지기는 더욱 싫어하지만.) 소름끼치도록 싫어하는 대표적인 놈이(파리와 모기포함) 산채로 누워서 나에게 몇 개 인지도 모를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동공은 확장되었고 심장은 멎었고 온몸이 쭈뼛해졌다. 찰라동안만이다.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설국열차의 영양갱이 왜 떠 올랐는지, 아니 얼마 전 독서클럽에서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가 왜 그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평소같으면 항상 손에 들려있던 책으로 압사를 시키고 물티슈로 닦았을 터다. 도대체가 얼마나 거대한 놈인지 신기하기까지 한 그 놈이 관찰했다. 등판을 방바닥에 기댄 채 발길질이 약해지다 멎더니 다시 힘없이 오무락조무락하는 이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렇게 재수없는 막무가내불청객과 눈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십중팔구 나는 패배였는데 다행히 이놈의 눈은 방바닥쪽에 있었다.
'변신'을 읽을 때 한페이지 가득 그려진 만화그림을 빼고는 실제로 본 가장 큰 놈이 내 방 정중앙에 누워있다. 아무리 봐도 들어올 틈도 없는 이 곳에 말이다. 분명히 다른 곳에서 중상을 입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일게다. 어탁을 뜨듯 이놈을 떠놓고 싶었다. 일단 뜨기 전에 오백원동전으로 크기를 가늠했는데 확실히 길었다. 다시 이성을 되찾고 이 놈이 동료나 가족이 있는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다행히 없었다. 한숨을 쉬고는 이 놈을 수장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물티슈로 온몸을 감싸고 한발짝만 움직이면 닿는 양변기에 던지고 레버를 꾸욱 누를 생각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그리고 아침부터 열두시간 넘게 내 몸속에 채워 넣은 각종 식음료들을 발사해서 확인 수장까지 할테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로 샤워할 계획까지 끝냈다. 일단 물티슈로 덮었다. 아니 덮으려고 했다.
으아아아! 이 놈이 내내 연기를 한 것이다. 순식간에 뒤집히더니 총알같이 뛰었다. 뛰는 정도가 아니라 튕겨져 나갔다. 불을 켜고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더 무서웠다. 꼭 이 놈이 나를 해치려 들어왔다가 경찰이 들이닥쳐 도망가는 강도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곳엔 나를 구해줄 경찰이 없다. 이 놈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샤워실로 튕겨져 나간 그놈은 샤워실의 바닥꼭지점 모서리에 찰싹 들러붙어있다. 벽에 세게 부딪혀서 죽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놈이다.
인류는 사라져도 저 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설인지 사실인지를 자주 듣질 않았는가. 저 놈이 뒤로 돌아 나를 향해 돌진해오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선수를 쳐야 했다. 욕실화를 들었다. 한 손에 하나씩. 꼭지점이라 잘못공격하면 바닥이 닿질않아 멀쩡한체로 나를 공격하거나 내 다리 사이나 옆으로 피한 뒤에 숨어버릴 수도 있다.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왼손에 들린 슬리퍼로 살짝 건들었다. 역시 이놈 제트기를 달았다. 나를 향해 튕겨져 나왔다. 따악! 세게도 내리쳤다. 아마 옆방과 아랫방, 아니 옆고시텔과 아래 고시텔사람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고 지진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소리가 컸다. 욕실화를 들었다. 또 오마이가뜨! 분명히 역실바닥타일에 딱 붙어서 종잇장처럼 되있어야 할 놈이 안보인다. 귀신이 곡하고 있다. 휴우... 다행히 오른손에 들려있던 욕실화바닥에 붙어있다. 구멍이 뽕뽕 뚤린 사이사이로 팔다리를 포함해 머리와 배, 가슴 일부가 올라와 있었다. 1 대 1전쟁은 완전한 승리였다. 그 놈도 아마 가장 빠르게 죽었으니 죽을 복 타고 난 놈이다.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깨끗이 압사당했으니.
특급호텔처럼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다.
욕실화를 충분히 샤워시켜주었다. 검은 사체들 조각은 완전하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였다. 2리터를 가득 끓여 욕실화에 모두 비웠다. 욕실화는 녹아서 없어질 것처럼 흐물거렸다. 깨끗하다. 그 날 샤워 무지하게 오래했다. 물티슈 열장도 넘게 써가며 대청소까지 했다. 편의점가서 바퀴벌레약도 사왔다. 뿌리는 것 밖에 없단다. 뿌리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화가 났지만 방금 죽은 놈의 가족이든 친구든 복수해올 것을 생각하니 문제가 안된다. 그놈들을 모두 없애거나 침입하지 못하게만 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냄새다. 이불을 덮고 누웠다. 혼자 목욕까지 깨끗하게 하고 누워 천장을 보니 이곳이 관 같았다. 이 곳이 관이라면 꽤 널찍하다. 이대로가 관이라면 부자로 살다 죽으려나 보다.
설국열차의 영양갱이 생각난 것은 웃길 노릇이다. 곧바로 슬플 노릇으로 변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레고르는 나였다. 20대 초반부터 세일즈를 해 온 나는 100년 전 그레고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레고르는 효자고 나는 불효자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도 처참히 버림받은 가장의 역할이 그레고르였다. 그렇게 희생한 그레고르도 버림을 받는데 가족에게 희생이 강요된 내가 변신했다면 어찌 될 것인가. 급기야 생각이 미친 것은 그 자리에서 내가 방금 했던 것처럼 당하지는 않을지. 가족에게 미안하고 나는 한심하다.
방금 그레고르는 죽었다. 내가 죽였다. 순식간에 죽음을 당했다. 백년 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세일즈맨을, 가족을 희생시킨 지금의 세일즈맨이 죽였다. 백년 전 그레고르 아버지도 사과를 던져 아들에게 심한 상처를 내게 했고 앓다가 결국 죽게 만들었다. 지금 내 가족은 내가 무엇으로 변했을 때 나를 학대하고 내 죽음을 바랄 것인가. 이미 독충처럼 괴롭힘을 주었던 나를 한없이 감싸주기만 한 가족들인데 말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잠시인지 길게 였는지 카프카의 변신은 백년 후의 중년세일즈맨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감사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하이작가의방
유준원(noran7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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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는 ‘작가의 방’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나이부터 50대의 나이까지, 다양한 감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한국인들이 모였다. 매주 일요일 오전 두어 시간의 모임에서 똑같은 제목으로 두 꼭지의 글을 써서 공유하고 있다. 상하이저널이 진행하는 ‘책쓰는 상하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인 작가들의 글쓰기, 책쓰기, 시작법 등 공개 강의 과정에 함께 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의 방’ 플랫폼은 상하이에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예비 작가들을 격려했고 신인 작가를 발굴해내고 있다. ‘작가의 방’이 상하이 교민사회에서 인문적 삶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며 문화 수준을 올리는데 기여해 나가리라 믿는다.
shanghaipark@naver.com [작가의방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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