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만 되면 어머님은 우리를 많이도 기다리신다. 남편이 장남인데다 큰 아이가 장손이다 보니 1년에 한 번 보는 손자를 무척이나 기다리신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리 보고 싶은 손자를 1년에 한 번 보는 어머님께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 친정은 2층 단독주택이지만 시댁은 아파트다. 우리가 오면 어머님은 거실에 두터운 보료를 잔뜩 깔아 놓으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시기가 겨울이고 아이들이 푹신한 보료에서 맘껏 뛰어놀라 그러신 줄 알았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던 즈음 시동생네 아이들까지 합세하니 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밤이 있었다. 오랜만에 뭉치게 된 분위기는 밤 8시쯤 초인종 소리에 급냉각 되었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것이다. 1년 내내 노인 두 분만 사는 집이라 시어머님과 시동생은 1년 중 하루인 섣달 그믐, 이 날 하루 시끄러운 건 양해가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야 처음이라 그저 미안하다 하고 아이들을 강제로 조용히 시키고 있는데 어머님과 시동생 얼굴이 많이 굳었다. 급기야 시동생이 아래층에 다녀 왔다.
그 이후론 항상 한국 방문 시 시댁에서는 아이들을 조심시킨다.
아이들이 셋이다 보니 최근 7년간 다락방이 있는 꼭대기 층에서 살다가 얼마 전 4층으로 이사를 했다. 올 겨울이 춥다 보니 끼인 집에 4층이 무척이나 아늑하였다. 마침 위층은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듯 하여 인사도 하고 안심도 하였다. 조부모와 부모, 손녀가 3대가 사는 아래층이 걱정이 되어 기회를 틈 타 인사를 하였다. 이사를 오며 타일 바닥인 거실이 마음에 걸려 주인과 의논해서 장기 계약을 하며 필름 난방과 마루를 깐 덕에 2cm정도 바닥이 높아져 저절로 층간 소음 예방 효과가 있는 듯 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 바로 위층의 소리가 너무 잘 들리는거다.
심지어 거실에서 코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발 쿵쾅거리는 소리, 마늘 찧는 소리 등 별별 소리가 다 귀에 들어왔다. 층간 소음이 안되는 바닥처리도 처리지만 아마도 7년 동안 맨 꼭대기에서 산 탓에 소리가 더 잘 들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중국에 살며 아래층에서 우리 집에 올라 온 기억이 거의 없다. 항상 좋은 아래층, 맞은 편 중국 이웃을 만났구나 감사하며 살았다. 혹은 중국은 아파트를 지을 때 의외로 층간 소음대비 바닥 처리를 잘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위층에선 간혹 일렉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고등학생 아들을 둔지라, 또 고등학생들의 생활패턴을 아는지라 밤 11시에 울리는 일렉 기타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잘 넘어가던 찰나. 그 날은 11시에 시작한 기타 연주가 12시가 넘어도 계속되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남편이 위층에 올라갔다. 그 이후로 많이 조심하고 주의해 주는 것이 밤 늦게 일렉 기타 연주하는 일은 없다. 다행이면서도 밤 늦게 찾아간 것이 얼굴을 뵐 때마다 미안할 때가 있다.
맨 꼭대기층이라 따로 공중화원과 다락방이라는 공간의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바로 위층에서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던지라 아이들은 순간 자신이 밟고 있는 마루를 바라보는 걸 느꼈다. 위층에서 저렇게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본인들이 뛰거나 공을 치거나 하면 아래층에서 다 들리겠구나 이제야 깨달은 거다. 일렉 기타를 가끔 연주하던 남편도 이 곳으로 이사 와서는 집에서는 아예 손대지 않는다. 이전 집에서는 2층 다락방에 두고 가끔씩 연주하였는데 바로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더니 남편도 아래층을 염두해 두는 듯 하다.
비단 조심하는 건 어른뿐이 아니다. 위층에서 소리가 더 잘 들릴수록 아이들 또한 아래층에 들릴만한 소리를 스스로 조심함을 보게 된다.
예전에 아이들이 공을 거실 바닥에 튀기거나 큰소리 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야단도 치고 주의도 주지만 아이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이 곳에 이사온 후론 아이들 스스로 아래층에 소음이 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위층의 층간 소음이 아이들에게 아래층을 위한 배려로 저절로 학습이 된거다. 심심찮게 층간 소음이 큰 감정 싸움이 되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뉴스거리가 됨을 보게 된다. 3층, 4층 우리집, 5층 세 집의 생활 패턴, 사는 모습이 다르고 활동하는 시간대 또한 다르리라. 소리로 간혹 전해 오는 위, 아래층간의 생활 모습에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배려를 하고, 또 누군가의 배려를 받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배려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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