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외출해서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전화를 걸뻔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이별을 하다니 아직 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난봄 아버지의 탈장수술로 한국에 다녀와 바로 아버지의 직장암 소식을 들었을 때 곁에 있을 수 없는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지낸 시간들이었다. 엄마 떠나고 17년 홀로 지내시며 동생과 나 모두 외국에 살다 보니 늘 죄인같은 마음이었고 그 사이 수술 하시고 요양병원에서 방사선치료 받으시며 7개월이 지났다.
감사하게도 지인들의 정성과 사랑의 도움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난 그저 자주 전화 드리는 것만 할 수 있었는데 지난달 중순 작은 아이가 군에 입대하게돼 겸사해서 한국을 가게 됐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한번도 가 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 가득 안고 금요일 늦게 지인과 아버지를 뵈었을 때 얼굴에 가득 웃음을 안고 딸을 반기던 아버지. 반가운 마음도 잠시 담당 의사 면담요청이 있어 만나게 되었는데 말은 6개월 정도 이지만 소견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신 것 같으니 아버지가 준비할 수 있도록 하라며 권하신다. 아버지의 밝은 모습으론 믿겨지지 않지만 그래도 다음날 토요일 우린 종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긍정적이신 아버지, 평생을 신앙을 가지시고 살아오신 아버지는 죽음도 그저 삶의 한 부분이신 듯 그날 우린 커피숍 따뜻한 창가에 앉아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당장이라도 신이 부르시면 가야지 하셨고 난 그 동안 아버지께 감사했다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신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표현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의사선생님의 불가능 하다는 말을 뒤로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아버지와 함께 주일예배 드렸는데 어찌나 힘차게 찬송을 하시는지 잠시 건강한 아버지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힘이 들어 성경을 볼 수가 없구나 네가 읽어주겠니?"
돌아와 침대에 누우신 머리맡에서 난 성경을 읽어드렸고 잠시 잠드셨던 아버지께서 "말씀이 자장가 처럼 달구나" 하신다.
"내일은 아들 입대하는데 가서 못 올 것 같아요."
다음날, 훈련소로 가는 버스에서 아버지께서 중환자실로 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은 뛰는데 그래도 아이를 들여보내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암이 폐로 전이돼 숨이 차 하시면서도 아이는 잘 들어 갔냐시며 내 손을 잡고 기도해주신 아버지. 그리고 다음날 화요일 아버지는 평온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예상치 못했지만 딸의 죄송한 마음을 헤아리신 걸까. 곁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같이하게 됐고 아버지의 머리맡엔 아버지가 평소 늘 소중하게 여기시던 성경책과 메모지 돋보기 그리고 휴대폰이 주인을 잃고 외로이 남아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마지막까지 오관이 흐리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가시고 싶다던 소원대로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고통없이 그렇게 아버지는 떠나셨다.
예상치 못한 내 생의 5일, 난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하루하루가 너무 의미 있었고 난 슬플 겨를도 아파할 틈도 없었다. 이상하게 내 입에서는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지난봄 아버지께서는 한 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셨다.
“마지막까지 헌신의 길을 가신 인생의 선배이신 아버지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 아버지의 빈 자리를 더욱 느끼겠지만 이제 추억이 되어버린 당신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 가르침으로 남아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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