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며칠 전부터 내 기분은 살짝 흥분되어 있었다. 큰아들 녀석이 용돈을 모아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할때까진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논산 훈련소에서 5주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 때 아빠가 가서 아들을 보고 오겠다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난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얼마나 시일을 잡는지에 대해 궁금해 지기 시작했고 다행인지 요행인지 두 부자가 같은 날 떠나게 되었다.
남편은 10일, 아들은 3주, 난 그 동안 자유부인이다. 내 머릿속은 온통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있었고 그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일단 밥을 하지 않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커피한잔 마시며 음악을 들어야지. 아, 인터넷으로 영화도 한편 봐야겠다. 여기는 시골이니 음식을 배달할 수 없으니 느긋하게 읍내(?)나가서 지인들을 불러내 맛난 것 먹고 차 마시며 수다도 떨까? 귀가시간 구애 없이 좋은 구경도 해야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채 정리도 되기 전 두 부자는 한국으로 또 동남아로 떠났다.
그런데 난 그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에 건강이라면 늘 자신하던 나였는데 하필이면 이때 지독한 감기몸살로 온몸이 마치 멍석말이라도 당한 것 처럼 어찌나 아픈지 목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조차 켤 힘이 없이 그냥 쓰러져서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후에 보니 유통기한 한참 지난)약만 털어 넣고 있었다.
그사이 폰에서는 두 부자의 즐거운 여행 소식들이 쉴새 없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아픈 와중에도 어찌나 화나고 약이 오르는지 ‘흥, 자기들은 아주 좋은 시절 보내고 있구나’하는데 ‘자유부인은 아무나 하나’란 비슷한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라도 소통할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혼자 남아 보란 듯이 자유를 즐겨보리란 내 생각은 하루도 누려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마는거였나. 남편이 돌아왔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잘 쉬면 7일이면 낫는다더니 겨우 추스린 나를 향해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온 남편은 그러니 있을 때 잘해 하며 자기도 너무 피곤하다 투정하며 염장을 지른다. 부엌에서 혼자 투덜거리며 저녁을 준비하며 어이없이 지나가버린 요 며칠이 야속하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돌아와 곁에 있으니 누려보지 못한 자유부인의 시간들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의지가 된다. 그리고 아직 여행중인 아들의 안부 글이 나를 웃게 한다. 이렇게 잠깐 동안 꿈꾸던 자유부인의 시간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고 누구나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여서 행복하고 감사하고 또 이런 소박한 꿈도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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