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2살이 된 딸 아이 어릴 적 육아일기를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태어나기 얼마 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초등 3학년 무렵까지 썼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쓰면서 아이가 새롭게 하는 행동이나 어눌한 말들을 기록해놓아서 지금 읽어보면 정말 이럴 때가 있었나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함께 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로 와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 성장기에 아빠와 남편의 부재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야만 했던 탓인가 남편과 함께 누렸던 그 시간들을 다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이제는 품을 떠난 딸이 그리운 마음에 펴든 육아일기에서 딸아이와 함께 아빠로 성장하고 있는 남편의 흔적을 재발견한 기쁨이 크다.
기억력이 쇠퇴해서 시간의 흐름이 빠른 것처럼 여겨진다고 했던가, 어느 새 중년의 중반 턱에서 의연한 것처럼 지내다가도 왠지 우울해지고 일상이 자꾸 귀찮아지고 남편도 성가시게 느껴지는 요즘인데 20년 전 썼던 일상을 읽으면서 우리가 함께 가꿔 온 가정과 아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하다는 생각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두살 배기 딸에게 주는 메시지로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지만(^^) 386 컴퓨터 마우스로 그렸던 비트맵 그림이 정겨워 나누고 싶다.
내가 어른이 되면
내가 어른이 되면
농부가 될테야
소중한 땅을 가꾸고 심고 거두어
진실한 땀의 열매를 지을테야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을 교실로 만들겠어
강요하고 암기시키는 그런 교실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쳐 주는 교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교실
남을 밟고 올라서는 방법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교실
그런 선생님이 될테야
내가 어른이 되면
대장장이가 되겠어
총을 모두어 호미를 만들고 탱크를 녹여서 쟁기를 만들겠어
그래서 마침내
힘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고
사랑이 세상을 다스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테야
그때는 우리 모두
어깨 마주 걸고
노래하며 기뻐 춤을 추겠지
더 이상 자유를,
민주를, 평화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되겠지
내가 어른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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