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하여 최남선이 작성하고 한용운이 낭독한 이 독립선언서를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기성세대라면 국어 시간에 열심히 암기했던 기억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시절 우리들은 삼일절이 공휴일이었음에도 각 학교별로 개최하는 삼일절 기념행사에 의무적으로 참가해 “독립만세”를 외쳤고,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면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으며, 삼일절이면 방영되던 영화나 특집극을 보며 수많은 선조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고초를 겪고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배울 기회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자도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처럼 시험에 나온다는 선생님 말씀에 억지로 독립선언서를 외웠었고,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제창할 때는 어색함에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지만 그때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일본이 얼마나 우리 민족을 괴롭혔었고 나라 잃은 백성들의 삶이란 얼마나 고된 것이며, 우리 선조들은 그 억압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린 시절의 배움과 체험이 바로 한국인으로서의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면 이국 땅 상해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하여 1776년 발표한 미국 독립선언서를 배울 기회는 있어도 정작 우리의 독립선언서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상해에서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이 큰 맘 먹고 데려가지 않은 이상 천안의 <독립기념관>은 커녕 서울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도 가본 적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 인구가 이천만 명에 불과하던 삼일운동 당시 전국에서 200만 명이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유관순 누나도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생소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정식으로 기록된 일본의 한반도 침략 횟수가 고려시대에는 무려 515회, 조선시대에도 178회였다는 통계가 있다.
1910년 경술국치부터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 때까지 36년간 일본에 지배당했던 상처는 아직도 한국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휴전상태이긴 하지만) 60년 넘게 평화 속에서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 선생님께선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와 번영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등 개인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도와주는 지식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삼일절을 맞이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약력
김동찬
현 HERO 역사연구회 연구원
현 복단대학 국제정치학과 미중관계 전공 박사과정
2013년 복단대학 역사학과 중국
근현대사 전공 석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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