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상하이, 창업 분위기도 달라
베이징의 중관촌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만큼 창업 분위기가 뜨겁다. 베이징대와 청화대를 기반으로하는 풍부한 인적 네트웍도 있지만, 북방 특유의 떠들썩한 토론 문화가 미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들여와 쉽게 로컬화 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 가면, 처쿠(?)카페(차고카페: 애플과 구글의 창업이 차고에서 이루어진 것을 본 따 베이징의 중관촌 등지에 만들어진 창업자 모임 카페)가 있고 그곳에 가면 다른 창업자나 잠재적 투자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상하이는 베이징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데, 다소 이성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있다 보니 시끌벅적한 창업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또한 상하이인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던 성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점점 많은 상하이의 대학생들이 창업에 나서고 있다. 이공계 중심 대학인 교통대 출신이 창업자 숫자에서 가장 많고, 복단대 역시 창업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 등 대학생들의 창업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베이징이 중국의 창업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고, 그보다 절반 수준 규모로 상하이에서도 점점 많은 창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심천 또한 O2O(Online to Offline) 산업의 중심기지로 포지셔닝 하면서 창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30만위안에 40% 지분
상하이 정부가 상하이 출신 스타트업 육성에 팔을 걷고 나섰다. ‘상하이엔젤투자기금’은 매년 수 백 개의 스타트업들에게 정부의 투자 자금을 지원한다고 한다. 무상은 아니고, 30만 위안을 투자해 주고 해당 벤처 지분의 40%를 대신 받아 온다고 한다. 스타트업들이 매우 초기 단계이지만 이는 대단히 높은 지분율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제도안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다. 40% 지분은 담보물이고, 3년 이내에 언제든지 벤처들이 되갚을 수 있는 조건이란다. 즉, 무이자 대출과 다름이 없다. 돈을 갚으면 지분을 되사오게 되니 장기적으로 이보다 나은 지원이 있을까? 만약 3년 이내에 벤처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고스란히 돈을 날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하이 정부는 왜 이런 손해나는 지원을 하는 것일까? 그간 글로벌 도시 상하이는 금융의 중심지도 발돋움하면서 자유무역지대를 기치로 물류와 유통의 허브로 위력을 더해 가고 있다. 다만, 이들 모두가 대기업 중심의 산업이다. 상하이에는 다국적 기업들도 가장 많이 진출해 있다지만, 정작 중소 규모의 기업들이나 젊은이들의 창업 문화가 베이징에 비해 약했고, 현재 내로라하는 중국의 ICT 기업들 중에 상하이 출신이 매우 적다.
이를 염려한 상하이 정부가 의도적으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큰 부담없이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모든 창업 기업들이 성공을 못하더라도 그 중에 상하이를 대표하는 젊은 IT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상하이의 경제 발전에도 공헌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점점 많아지는 한국의 글로벌 창업지원, 실효는?
한국의 정부는 어떠한가? 창조 경제를 모토로 정말 좋은 제도와 기금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로 나가자는 기치아래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창업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원하는 정부 기관 및 전문 엑셀러레이터의 노력에 비해 막상 창업자들의 숫자가 너무 적고, 그 중에서 해외로 나올 역량을 갖춘 글로벌 벤처 기업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솔직히 얘기하면 중국의 경우는 더욱 척박한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데모데이(DEMO DAY: 스타트업들이 투자자 앞에서 자신들의 비즈니스 계획을 발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짧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날) 이후 실질적인 비즈니스 진행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투자자들 또한, 한국의 벤처 기업들에게 관심이 적다. 이유는 벤처들이 대부분 중국어가 되지 않고, 영어가 되는 경우에도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대부분 한국에 등록되어 있어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기도 한다. 투자 후 자신들이 컨트롤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과 노력은 가히 감동적인 부분이 많다. 무상으로 수천만원에서 1억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매칭펀드라는 개념으로 엑셀러레이터가 1억을 투자하면 동일한 배수 혹은 훨씬 큰 배수의 엔젤 투자를 한다. 단 1%의 지분도 확보하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하는 돈이다. 나는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창업 기업은 이윤의 창출 혹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해 집단이다.
경제 문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다소 정치 논리 혹은 사회적 당위성으로 지원되고 있는 형편이다. 즉, 지원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벤처들이 어린 아이처럼 보살핌을 받기 보다는 자주적 주체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하는 측면 지원이 나아 보인다. 곱게 키우지 말고 강하게 키워야 큰 재목이 될 수 있다. 특히나 척박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말이다.
앞서 상하이 정부의 지원이 심플하면서도 매우 경제적인 지원에 머문 것에 비해, 한국 정부의 지원은 다소 과도하기도 하고 오히려 벤처들의 이성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즉, 과도한 지원이 이루어지면, 창업은 국가 돈으로 하는 것이고 비즈니스 비용도 공짜로 지원 받는게 당연하다고 잘못 인식하게 될 수 있다. 수업료를 어느 정도 부담하고 듣는 수업이 공짜 수업보다 집중도가 높은 것과 동일하다.
글로벌 벤처의 꿈은 이루어질까?
길이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렇게 어려운 해외 창업도 하나 둘 시도하다 보면 소수라도 빛을 발하는 한국의 벤처 기업들이 나올거라 기대한다. 대기업이 못한 성과를 벤처들이 이루어 낼 수도 있다. 대기업들은 틀에 박힌 구조적인 접근을 많이 하고, 정보가 너무 많고 한국에서의 우월적인 포지셔닝 때문에, 중국 기업들에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반면, 벤처 기업들은 언제나 민첩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호 대상이기도 하다. 컨텐츠나 기술, 비즈니스 모델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말이다.
현지 유학생들의 창업도 잠재력이 있다. 특히, 공부를 하면서 만난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회사라면 더욱 기대가 된다. 따로 로컬화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진출한 벤처기업도 독자적인 진출을 고집하기 보다는 중국인 파트너를 찾아서 함께 성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시장에서도 성공한 중국 기업이 거의 없다. 중국은 더욱 폐쇄적이다. 아예 법률로써 외국인의 접근권을 제한한 산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지혜로운 전략은 파트너십일 거다.
‘길은 원래 놓여져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비로소 길이 되었다’는 노신의 말처럼, 지금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끊임없는 한국 벤처들과 정부, 엑셀러레이터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볼 날이 기대된다. 정부의 벤처 지원 또한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비즈니스 측면의 지원이길 기대하고, 정권이 바뀐다고 정치 논리로 모든 것이 중단되는 악순환도 없어야겠다. 스마트시대, 스마트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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