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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진정한 전통과 문화의 힘

[2015-04-08, 09:57:35] 상하이저널

남편은 5남매의 막내이다. 막내들의 불행이라면 형제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게 된다는 것 아닐까. 남편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이미 다 세상을 떠나셨다. 십 수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신 그 해 여름은 정말 유난히 더웠다. 상복은 통기성이 없는 합성 소재라 답답하기 짝이 없었고 검은 양복에 두건을 쓴 남자 분들은 얼굴이 벌겋게 익어 보기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어머님은 혼수상태에서 보름 정도를 지내셨는데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운명하시고 나니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병실을 떠나자 마자 상주들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 도우미가 없던 시절이라 문상객들 음식 대접하느라 앉아 있을 틈도 없었다.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이 가족들 모두 새벽녘까지 음식을 나르고 더위와 싸우느라 고작 하루 만에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다들 그렇게 경황없이 허둥거릴 때 난리가 났다. 연세 많은 당숙께서 오셔서는 상주들이 삼베 옷을 입지 않고 양복을 입은 것이 도리에 어긋난다며 당장 옷을 제대로 갖춰 입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었다. 한나절 한탄을 늘어놓으시던 당숙은 밤 늦게야 겨우 진정이 돼서 돌아가셨다. 더위와 문상객 접대에 지친데다 당숙 눈치 보느라 숨죽이고 있던 가족들은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당숙이 돌아가시자 남자분들은 다시 집안 전통과 장례 예식에 열띤 토론을 하며 되려 그런 당숙으로 인해 뼈대있고 예절있는 집안이라는 것이 확인된 양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발인하고 장지에 가서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끝없이 찾아 드는 문상객들 식사에, 곡을 크게 안한다고 혼나기도 하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이런 일들은 어쩌면 우리 세대로 이미 끝나고 있지 않나 싶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너무 지나친 예법과 절차로 지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간편함이 때로는 우리의 인간미를 앗아가기도 하니까. 이제 우리는 좀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인 황모 할머님의 장례식장을 스케치한 기사를 보았다. 일제는 우리의 관혼상제를 많이 개량했는데 삼베 수의, 검은 완장, 상장, 꽃 장식, 화환, 헌화 등이 모두 100% 일본 풍습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 전통으로는 꽃장식이 아니라 병풍을 치는 것이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평소 입던 옷 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입혀드렸단다. 검은 양복에 완장을 다는 것은 간소화의 의미 뒤에 정치 사회적인 여러 의미도 담겨있었다 하니 씁쓸하다. 돌이켜보니 젊은 사람들 힘들게 하는 것만 같았던 당숙어른의 삼베 상복 타령이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어 부끄러운 마음도 들고, 꽃 장식의 화려함과 화환이 위세를 부리는 장례식장 풍경에 무감각했던 것이 부끄럽다.


예절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의식과 절차를 꾸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전통과 문화의 힘이 아닐까. 무엇보다 죽음과 이별, 슬픔이 허세로 치장되는 것만큼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구름에 실린 달팽이(geon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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