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청소년 통일축제 '통일글짓기' 중등부 대상 수상작
한낱 인간이었습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아직 어린 두 아들들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표정은 평온해 보이지만 왠지 얼굴 어딘가에 근심이 있어 보입니다. 붓을 휘두르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먼 산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다시 무언가를 적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아직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두고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아내는 지아비 생사를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편지에는 두 아들들에게 당부의 말이 적혀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힙니다. 하지만 이내 아무도 못 보게 눈물을 슥 닦습니다.
이번엔 또 다른 한 남자가 개성을 돌아다닙니다. 한 고등학교의 생물 교사라는사람이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보다 못한 어느 친절한 사람이 그를 보더니 어딘가로 데려갑니다. 하지만, 점점 그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아마도 그가 원했던 곳이 아닌가 봅니다. 친절한 사람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묻습니다.
“뱀을 찾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닙니다, 나비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비는 찾아서 무엇 하려고?”
“찾아서 잡아 연구해야지요.”
“왜 많고 많은 동물 중에 나비를 연구하십니까?”
남자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 평온합니다. 결국 하루 종일 나비를 찾아 다니고 돌아와 하나하나 표본을 만들어 자세히 보고 곤충 도감과 비교합니다. 그의 온 신경이 나비에 쏠려 있습니다. 그의 방에 널려있는 나비 표본들이 그가 꾸준히 나비 연구를 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정말 나비에 미쳐 있는 사람 같습니다.
깜깜한 밤입니다. 초롱불 하나 켜 놓고 그 빛 아래 어느 누구보다 바쁜 한 소녀가 있습니다. 그 소녀는 열심히 하얀 종이에 태극 무늬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손놀림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휙휙 그리는 듯 하지만 표정은 결의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워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아침 일찍 장터에 나가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손에 정성스레 만든 태극기를 쥐어줍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태극기를 나눠주는 그녀의 얼굴은 비록 밤을 새워 약간 수척해 보이지만, 말로는 표현 못할 광채가 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감옥 안이 보입니다. 그곳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보통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빛이 절망에 가득 차 있지만 그는 다릅니다. 혼자서 태연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벌써 지친 듯 합니다. 절망이 담긴 눈동자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몇몇은 불안감을 못 이기고 소란까지 피웁니다. 그 가운데서 그가 호통칩니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다시 일깨워줍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불안감을 자신감으로 바꿉니다. 칙칙한 감옥 속, 오직 그만이 빛이 나는 듯 합니다.
앞의 네 사람은 모두 평범치 않아 보입니다.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가정을 떠나고, 나비 연구에 완전히 심취해 있으며, 밤을 새워가면서까지 태극기를 정성스레 만들고, 옥중인데도 불구하고 담담한 모습입니다. 과연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도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일까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날, 사람이 많고 번잡한 공원입니다. 집을 떠난 그 남자가 공원으로 슬며시 들어옵니다. 한 손에는 물병을, 또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든 그는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조선에 있던 그가 언제 중국 상해 홍구 공원까지 왔을까요? 제가 없는 동안 그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11시 40분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일본 국가가 공원 내에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립니다.
이번엔 다시 나비에 미쳐있는 선생이 보입니다. 그는 온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영국의 왕립 아시아 학회에서 무슨 요청이 하나 들어온 거 같습니다. 학교에 안 가있는 것을 보니 그거 하나 때문에 휴가까지 낸 모양입니다. 조선의 나비들과 논물들, 책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한번쯤 쉬어도 되련만 그는 요지부동입니다. 오, 드디어 그가 움직입니다. 알고 보니 여러 학자들과 토론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일반인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다시 그 작은 소녀가 보입니다. 아직 장터에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열심히 태극기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정오가 되자, 그녀가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섭니다. 그리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있습니다. 당당하고 힘찬 그녀의 연설은 누가 들어도 힘이 날 만합니다. 충남 천안군, 아우내 장터의 분위기는 고조되어 그 열기만으로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수감되어 있던 그 남자가 또 보입니다. 이번에는 칙칙한 감옥이 아닌 고요한 절입니다. 그가 침착한 표정으로 붓을 듭니다. 그리고 천천히 시를 써내려 갑니다. 시의 내용은 마치 한 여인이 쓴듯 부드럽고 온화한 반면, 그의 인상은 강렬합니다. 한 줄 한 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시에 뼛속까지 사무친 한이 담겨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그러나 너무도 하고 싶은 말들을 시의 연과, 행에 숨기고 감춥니다. 그렇게까지 절박한 그의 심정은 대체 무엇일까요.
어떤가요? 이 제보니 저 네 사람이 더욱더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가정을 버리고 엉뚱하게도 중국에 와있는 남자, 직업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나비만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 밤새워 태극기를 만들어 장터에서 나눠주고 있는 소녀, 감옥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던, 그리고 거침없이 시를 쓰던 남자. 네 사람 모두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입니다.
그래도 이 네 사람은 평범합니다. 이들은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제각각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럼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기나긴 35년의 세월 속에 있었습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70은 35보다 큽니다. 35가 70보다 더 크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아직 기본적인 연산도 못하는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전, 그런 미친 사람이 되어보려 합니다. 단언컨대, 35는 70보다 컸습니다.
보통 수업시간에서의 10분과 쉬는 시간에서의 10분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수업시간에서의 10분은 마치 100분처럼 참 더디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쉬는 시간 10분은 너무 짧기만 합니다. 같은 10분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습니다.
35년도 그렇습니다. 그 35년은 너무도 더디게 흘러갔습니다. 그 기간은 어두웠고, 슬펐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망의 불씨는 커녕 불을 지필 나뭇가지 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던 희망의 불씨를 조금씩 피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피어 오른 불씨는 빠르게 퍼져나가 마음속으로나마 혼자 울부짖던 사람들도 발벗고 나서 ‘그들’이 되었습니다.
위에 네 사람도 각각 ‘그들’중에 한 명입니다. 한 사람은 물통 폭탄을 터뜨려 전세계를 울렸습니다. 또 한 사람은 한국 나비 분류학의 체계를 세우고 세계 곤충학계에 이름을 널리 남겨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그 소녀는 감옥에서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꽃다운 나이에 숨졌고, 또 한 명은 ‘님의 침묵’이라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집을 한편 냈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냥 가정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해 온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나비만 주구장창 연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시를 썼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였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달랐습니다. 하지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네 사람 말고도 수많은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35년이었습니다. 이 힘든 세월을 참고, 견디고, 이 고통스러운 세월을 바꿔보고자 했던 ‘그들’이 있었기에 그 35년도 가치가 있었습니다.
70년보다 더 길었던 35년, ‘일제강점기’. 어느 사람에게는 고작 35년일 수 있습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광복이 된 후 흘러버린 70년의 반밖에 안 되는 세월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그저 짧게만 느껴지는 그 기간 동안, 조선이었지만 조선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인이었지만 조선인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합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초능력이 있거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라를 위하기 전에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이었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수다나 떠는 작은 소녀였으며, 절에서 도를 닦는 스님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평범치 않다고, 이상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는 상상도 못할 만큼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라를 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광복 후의 70년도 가치가 있습니다.
벌써 70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그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만,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이 이룬 업적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입니다. 우리처럼 아픔도 느끼고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어지는 인간입니다. 그럼 도대체 이제까지 수없이 말해온 ‘그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바로 독립운동가들이자, 진정으로 나라를 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라를 위하여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짓들을 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그들’도 한낱 인간이었습니다.
▷여지원(상해한국학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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