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8시 30분 베이징 시내 모 호텔 회의실에서 학생들이 중국 13경 중 하나인 ‘효경(孝經)’을 낭독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날 강의를 맡은 교사가 돌아오자 학생들이 일어나서 교사에게 경례를 올린다. 학생 대표로 꼽힌 반장이 준비한 따뜻한 차를 교사에게 공손히 따른다.
교사의 지도 하에 학생들은 반가(班歌)를 제창한다. 반가는 다름 아닌 남송 시대 무문 혜개라는 스님이 지은 책’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효경과 성공한 인생’이다. 유교문화 전문가가 중국의 전통미덕과 비즈니스 개념을 결합해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이밖에 유가·불가·도가사상과 경제·비즈니스 책임 의식 등이 수업시간에 소개됐다.
중국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에 최근 소개된 중국 ‘푸얼다이(富二代 재벌2세)’의 예절 학습반 ‘촹얼다이(創二代 창업2세)’ 현장의 모습이다. 부모가 피와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에게 책임감 있는 기업인으로서의 창업가 정신을 키워준다는 뜻에서 ‘촹얼다이’라 붙여졌다.
학습반에 출석한 학생들은 중국 푸젠(福建)성 지역 민간기업인 자녀 70여명으로 구성됐다. 평균 연령은 27세 정도로 대부분은 학사 졸업이지만 3분의 1 가량은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지난 2013년 푸젠성 샤먼(廈門)시 쓰밍(思明)구에 소재한 민간기업인이 자녀 예절 소양 함양을 위해 해당 구 정부 측에 요청해 시작됐다. 일부 자녀들이 부모님의 재산만 믿고 호화사치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우려해 직접 정부 측에 부탁한 것.
학습반 1기 때부터 신청자가 대거 몰리면서 2기부터는 푸젠성 출신 기업인 자녀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올해로 벌써 4기 학습반이 운영 중이다. 안타(安踏), 치피랑(七匹狼) 등 푸젠성 유명 민간기업의 CEO 자녀들도 모두 이 학습반을 거쳐갔다.
학습반은 매우 엄격한 규율 하에 운영되고 있다. 지각, 조퇴, 혹은 무단 결석 시 벌금이 1000위안(약 18만원)이다. 2번 이상 무단 결석하면 경고, 4번 이상이면 제명된다. 벌금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학습반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쓰밍구 정부판공실 룽샤오보(龍小波) 주임은 “일부 푸얼다이 자녀들은 특권·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엄격한 규율을 통해 책임감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습반에 참여하는 한 푸얼다이는 “사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일종의 압력이기도 하다”며 “이러한 압력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발전하고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국가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지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푸얼다이 예절학습반이 결국 또 하나의 부자들의 사교클럽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에서 푸얼다이는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대중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제멋대로의 사고와 헤픈 돈 씀씀이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얼마 전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에서는 중국 푸얼다이와 젊은 기업가들의 행동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도 밝힌 바 있다. 통전부는 이를 위해 교육을 통해 당과 정부의 신뢰도를 높이도록 하고 관련 조직을 통해 행동을 주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저작권 ⓒ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