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母之年은 不可不知也니 一則以喜요 一則以懼니라.
(부모님의 연세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그것이 기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걱정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논어를 읽어주다가 멈추고 말았던 구절이다. 연말 연초가 되어 한국 생각이 간절한데, 그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부모님이 계신다. 두 분 모두 70세를 넘기셨지만 심신이 건강하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셨고, 방송통신대에서 공부를 하신다던지 성경 공부를 하신다던지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 무척 부지런히 사셨다. 환갑이 넘어서도 산장에서 주무시면서 한겨울 지리산 종주를 하시기도 하셨다.
우리 가족이 가까이서 살면서 매일 부모님을 보며 살다가 상하이로 오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전화 통화에서조차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이 한해 한해 달라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아버지 혼자 보내신 어머니께 “엄마 왜 같이 한라산도 올라가시고 하시죠”라고 했더니 엄마 대답이 충격이었다.
“엄마 이제 산에 못 올라가.”
내가 상하이에 오기 전까지 매일매일 등산을 하시며 ‘청계산 다람쥐’로 불렸던 어머니셨는데, 발바닥도 아프고 이제 다리가 휘어서 오래 버티지 못하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감기 한번 안 걸리신 분이었는데 올해 감기가 한 달 이상이 지속되어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하셨다.
얼마 전 딸아이가 2016년부터 시작해서 2050년까지 연도를 쭉 적어놓고 그 옆에 자기 나이를 적어놨다. 딸아이는 2050년엔 30대가 넘는데 이때 꼭 나한테 엄마가 갖고 싶은 보석 반지를 하나 사주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께도 사드린다며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서 흐뭇했는데, 그때 문득 ‘우리 엄마가 살아계실까’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엄마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시려고 항상 기도하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이 어느 날 안 계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김치를 먹으며 ‘장모님 안계시면 이 김치는 영영 못 먹네’했던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가 주는 김치가 계속 되리라 생각한 내 자신이 한심하다. 내 주름 하나 느는 것에 속상해하고, 더 이상 팽팽하지 않은 피부를 한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전화만 하면 ‘언제 한번 안 오냐’는 부모님께 ‘뭐 하러 또 가나요’ 했건만 내가 한번이라도 더 가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일이 아닌 부모님께 나를 보여드리러 가야 했던 것이다.
부모님께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아기였던 시절,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꽃다운 청춘이었던 시절이.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가서 보고 싶다. 우리 부모님의 빛나는 시절을. 요즘 기온 영하 20도라는 서울에 사시면서 상하이의 추운 겨울을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라도 드려서 엄마 손자가 공부를 너무나 잘한다고 거짓말 좀 해드려야겠다.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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