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시를 즐겨 읽는 애독자가 아니더라도 '스며드는 것',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등 한 두 문장은 금방 떠올린다.
등단 30년을 넘긴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다. 그러나 정작 그의 문장의 본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인 자신도 '간장게장 시인', '연탄시인'이라는 별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쉽게 다가오는 시'라는 말에서 낮은 의미의 대중성으로 낙인 찍히는 듯한 혐의를 느끼고, 그 수위에서 자신의 문장이 곡해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글은 세간에서 수용되는 것보다 훨씬 정밀하고 깊다.
단 세 권으로 안도현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 책들을 고를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북항>,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백색평전>을 소개한다.
북항
[문학동네 | 2012-05-30]
“이번이 열 번째 시집인데 이제까지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린 시집이에요. 시인들에게는 시집을 낼 때마다 ‘아 이 사람이 좀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그전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시를 쓰려고 하는 구나’를 느끼게 하고 싶은 일종의 과시욕이 있어요(웃음). 저도 그 동안 제 시를 보고 ‘쉽고 편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이번에는 거기서 한 번 벗어나고 싶기도 했죠.”
박근혜 정부 들어서 한 '시 절필선언'으로 아마도 몇 년간은 시집을 내지 않을 것이기에 가장 최근의 시집이라 할 수 있는 <북항>에서 안도현은 예년의 시들과는 사뭇 다른 직조와 결을 보여준다. 그를 낭송하기 좋은 연애시를 쓰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가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살아온 시간들을 어떻게 시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는지 전율 속에 읽을 시들이 많다. ‘동무’ 같은 시는,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 어떻게 우리 말과 의식 속에서 무섭게 관철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현실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해학, 기지가 돋보이는 이 시집이야말로 안도현이 새롭게 도달한 어떤 지점일텐데 안도현 시인은 돌연 시 중단 선언을 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시민선대위 활동 이후 일종의 보복처럼 느껴지는 법정 송사를 통해 그는 한동안 뉴스에 오르락 거렸다. 그 와중에 나온 시 절필선언은 시인이 시대와의 불화를 자청함으로써 헬조선으로 지칭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는 쓰지 않지만, 시인이 현실과 떨어져서 살 수 없다고 확신하는 그는 지금도 트위터 단문 메시지를 통해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을 한다. 시인다운 우회의 언어와 비유의 말들로 세상을 담아내는 그의 선시 같은 짧은 문장들은 최근 [잡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 | 2009-03-03 | 초판출간 2009년]
안도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백일장을 휩쓸며 문청시절을 가장 화려하게 보낸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문예신동으로 불리던 그때 자연스럽게 시인의 꿈을 꿨다고 한다. 등단 이후 세상에 나온 그의 시들은 대부분 작고 하찮은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공조를 드러내는 시들이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던 [연어]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수퍼 베스트셀러이지만(100쇄를 오래전에 넘겼다) 그는 언제나 시를 본류로 헤엄치는 물고기였다.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문구를 크게 박은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는 안도현 시인이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시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쉽게 풀어쓴 시창작론이다. 나도 한 번 시를 써볼까, 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백석평전
[다산책방 | 2014-06-09]
“스무 살, 백석이 처음 내게 왔다. 그때부터 30년동안 그를 짝사랑해왔다.”
안도현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백석을 안도현 시인의 문장으로 되살려 낸 책이다. 백석과 관련한 꼼꼼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평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실관계의 정립에서도 돋보이지만 다른 백석 전기류와 이 책이 다른 확고한 지점은 안도현 특유의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문장들이다. 마치 백석 시인의 생애를 자신이 살아낸 것처럼 재구성했다.
이 책과 백석전집을 함께 읽는다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시심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것을 보게 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안도현이 시뿐만 아니라 산문에서도 보여주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장들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저녁시간이 온다. 하루 중에 가장 시적인 순간이라는 저녁, 시와 연애하는 법의 으뜸이라는 ‘술’이 모두를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시간에는 굳이 시를 읽지 않아도 좋다. 주변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시일 것이기에.
<책읽는 상하이 23강>
안도현 시인 초청강연
•1월 29일 오후 7시
•장소: 윤아르떼(宜山路2016号合川大厦3楼F室(허촨루역 1번출구))
안도현 작가는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이면 더욱 생각나는 국민 시구(詩句)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의 주인공이다. 섬세한 감수성과 유려한 시어로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는 서정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등이 있다.
2013년 상하이에서 1년 체류하면서 30년 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와 소설로 읽는 한국현대사> <사람의 숲에서 길을 묻다>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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