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라 고국 방문이 미주나 유럽 지역에 사는 동포들만큼 어렵지 않는 축복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사업차 한국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 분들도 많이 보게 된다. 타지에 나와 살면서 그리운 것은 고향뿐이 아니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 거기에 한국 물건도 포함된다. 그래서 한국 방문 후 귀국하는 사람들의 짐은 비행기 수하물이 허용하는 범위를 다 채운다. 나 역시 다시 상해에 돌아올 때는 마치 여기엔 아무것도 없는 곳인 양 사재끼고 바리바리 사온다.
출장을 자주 가는 분들이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신경쓰이는 일, 번거로운 일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인 부탁’이다. ‘한국 다녀올 때 이것 좀 부탁하네’, ‘한국 가면서 이것 좀 부탁하네’ 하는 것들은 사실 매우 ‘마판’한 일이다. 그런데 그 마판한 것이 참 거절하기도 어렵다. 간이 엄청 큰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 더 나아가 참 못돼먹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점점 ‘타국에서 동포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하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부탁을 하지도 말고, 부탁을 하더라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이 가족에게 보낼 물건이 있었는데, 지인 중 마침 한국 갈 일이 있는 분에게 좀 부탁을 했다. 가족들에게 물건을 보내자니 처음과 달리 욕심이 조금씩 생기게 되고 참는다고 했는데 그게 좀 과했던 모양이다. 물건을 건네받은 사람은 예상과 달리 커진 박스를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물건을 한국에서 보내는 일도 짜증나는 일이었기에 부탁한 사람에게 원망만 생기더라는 것이다. 다녀와서는 그 사람 얼굴도 보기 싫고 또 부탁을 할까봐 연락도 잘 받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몇 만원을 아끼자고 친구를 힘겹게 만든 사람도, ‘아 이건 그냥 네가 보내라. 난 이걸 할 수가 없어’ 라고 거절하지 못한 사람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부탁 하나로 관계까지 망쳐버리게 된 이유에는 부탁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이 제일 크겠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도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지인들 가운데 유명하다. 그래서 속해있는 단체에서 적지 않은 일들을 맡게 되었고, 그 때문에 일상이 소소하게 바쁘다. 물론 나는 이런 일들이 절대 낭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만큼 돌아오는 게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하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대번에 들켜버린 담에는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부탁을 시작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그 중 정말 하기 싫은 부탁을 들어줄 때에는 자꾸 본전 생각이 나면서 손해를 왕창 본 느낌이 든다. 내 시간과 정력을 빼앗긴 기분까지 들어 거절하지 못한 내가 바보같았다.
‘거절의 기술’, ‘미움받을 용기’ 등의 서적을 사서 읽게 된 것도 이런 내 성격 때문이었는데 생활에서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문구가 있었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나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 역시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 있게 말하라. SAY NO!!!"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타인과 분리해서 손해 ․ 이익 정확히 따지고 살 수 있을까 싶지만은 많은 사람들이 이 부대낌을 즐기는 동시에 힘들어한다는 것에 공감하리라 본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궁극의 목적은 나를 위함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생각한다면 이 작디작은 교민 사회에 얼굴 찡그리는 일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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