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온 뒤 얼마 안 있어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그 이듬해에는 메르스 사태로 시끄럽더니, 올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사건들이 매년 한 건 이상씩 일어나고 있다. 전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런 굵직굵직한 일들이 매해 일어나고 있으니, 정말 ‘밤새 안녕하십니까?’ 를 물어보며 살았던 일이 옛 일만은 아닌 것이다.
한 5년 전 서울의 광화문을 지나는 데, 여러 사진과 글이 게재된 판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사망하거나 건강에 막대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영유아가 숨을 못쉬어 죽고, 산모와 태아가 호흡 곤란으로 죽고, 건강하던 아이의 폐가 돌처럼 굳어지면서 역할을 제대로 못해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용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나도 그때 그 문제의 살균제를 사서 쓰고 있었다. 건조한 한국의 겨울을 보내고 나면 피부의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자다가 코가 막혀 몇 번을 깨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습기는 고마운 기계였고, 그 뿜어져 나오는 증기만 봐도 피부와 코가 촉촉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균 번식이 문제였다. 언론은 가습기 세균을 수치로 보여주며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고, 때맞춰 나온 살균제는 마법의 물건이었다.
나도 그 마법의 약품을 넣으면서 안도했고 라벤더 오일이 들어갔다는 광고에 흐믓하기까지 했다. 큰 아이를 낳고 첫 번째 겨울을 보내면서 열심히 이 가습기를 틀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절반을 안 썼을 때, 아이가 가습기를 내동댕이치며 고장을 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큰 아이가 자기 목숨을 스스로 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큰 아이는 지금 정도가 심한 비염으로 고생이다. 자다가 코가 막혀 벌떡 일어나기가 일쑤고 줄줄 흐르는 콧물 때문에 휴지가 필수 휴대 물품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걸 왜 샀을까... 그걸 왜 샀을까...’ 그걸 집어 든 그 당시의 영상이 자꾸 떠오르면서 가슴을 치게 된다.
나는, 아니 우리는 한치의 의심 없이 믿은 것이다. ‘인체에 무해하니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천연 라벤다 오일 함유’라고 적혀있는 그 병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매일 가습기 통을 닦아야 하는 불편에서 해방시켜 준 고마운 물건이었는데 믿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큰 사건으로부터 받은 충격 중에는 이렇게 믿었다가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되는, 결국 자기 손으로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는 죄의식이 크게 자리한다. 세월호 희생자 학생의 부모는 아이와의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 방송을 잘 듣고 하라는 데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단다. 그것이 결국 생떼 같은 아이를 차가운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내 손으로’ 만들었다며 가슴을 쳤다. 노상 훌쩍이는 우리 아이를 보며 배신감과 오묘하게 섞인 죄의식이 이 정도인데 아이에게 그 말을 한 부모님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번의 사고를 보면서 나조차도 이젠 ‘쉽게 믿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몰라서 속았고, 그게 분하고 억울하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분들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가 자랑스런 OECD회원국이라는데 국가도 기업도 책임을 회피하고 등을 돌릴 때, 그렇게 쉽게 믿더니 결국 이런 꼴이 되었구나 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잘잘못이 밝혀지면서 뒤늦게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기업들의 수장에게, 관련된 사람에게 그 액체를 쏟아 붇고 싶은 분노감을 느꼈다. 잘못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피의자만 있을 뿐이니까.
오늘도 약간 쌀쌀한 날씨에 맹맹한 코를 연신 풀어대는 아들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저릿한 미안함을 느낀다. 이젠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게,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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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