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담 주인공 찾고 보니 국가1급 배우
1만5000元 한국인에게 찾아준 후칭윈(胡晴云)
지난달 교민사회에는 훈훈한 미담이 전해져 관심을 모았다. 한 교민이 도로에서 잃어버린 현금 1만 5000위안을 중국 여성의 도움으로 5개월만에 되찾았다는 이야기였다. 카드나 지갑도 아닌 현금을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되찾게 된 사연을 듣고자 분실자 안영진 씨와 습득자 후(胡) 씨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구베이의 한 카페에서 먼저 도착한 안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후 씨였다. 안 씨가 후 씨에게 감사 인사와 꽃다발을 건네는 순간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그리고는 일행을 가게 안쪽의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영문도 모르고 자리를 옮긴 후에야 그녀가 상하이런(上海人)이 사랑하는 배우 후칭윈(胡晴云)임을 알게 됐다.
장미의 금언(玫瑰金口)
국가1급 배우 후칭윈은 토크 공연 ‘장미의 금언(玫瑰金口): 남자의 이런저런 일들’의 진행자로 유명하다. 여성의 시각으로 남녀 간의 일들을 유쾌하고도 명쾌하게 풀어낸 이 토크쇼는 서민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인문 소양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토크쇼로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진행, 중성적인 매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현대 상하이 여성의 워너비로 꼽혀왔다. 2011년에는 한류 여신 전지현과 중국의 탑 배우 리빙빙(李冰冰)이 주연으로 분한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서 전지현의 엄마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1.11. 부슬비 내리던 밤
두 사람 모두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그날’은 1월 11일이었다. 안 씨는 그날 저녁 가게 일을 마치고 점퍼를 팔에 건 채 도로로 나서 택시를 잡았다. 그 짧은 순간 점퍼 주머니 안에 있던 현금 1만5000위안이 도로 한 쪽에 떨어졌다. 안 씨는 “봉투에 넣은 것도 아니고 현금 뭉치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라 찾을 거란 기대도 안 했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탓이오’ 생각하고 잊기로 하고 지냈다”고 말했다.
후 씨는 그날을 좀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야오야오야오(중국어로 숫자 1은 ‘야오(要, 필요하다)’로 읽는다)였기 때문에 더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주운 돈을 부야오(不要, 필요없다) 했다. 하하”
그녀는 집 근처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돈 뭉치를 발견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에 젖은 돈 뭉치는 4만위안은 족히 돼 보였다. 그녀는 보안요원을 불러 그 상황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 또한 배우 후 씨를 한눈에 알아보고 인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 함께 세어본 돈은 정확히 1만4900위안이었다. 이들은 “다른 보안요원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당부하고 나서야 그 자리를 떠났다.
돈이 주인에게 돌아가기까지
그 후 4개월 간 두 사람은 이 일을 까맣게 잊고 각자의 일상을 바쁘게 살았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후씨는 불현듯 ‘어떻게 아직도 소식이 없지?’란 생각이 들어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 씨는 아파트 관리실(物业) 주임에게 1월 11일에 근무한 보안요원이 굉장히 수고를 많이 했으니 칭찬해달라는 말과 함께 샤오취(小区)에 가서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안 씨는 “혹시 돈을 잃어버린 일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관리실 보안요원들에게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안 씨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하지만 안 씨 외에도 소식을 듣고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럿 등장한 탓에 확인 절차는 다소 길고 복잡해졌다. 당시 잃어버린 돈의 금액, 형태, 정확한 위치와 시간 등에 대한 수 차례의 조사 끝에 6월 9일 마침내 안 씨는 잃어버린 1만5000위안 중 100위안짜리 지폐 한 장(빗물에 젖기 전 날아간 것으로 추정)을 제외한 나머지를 무사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안영진 씨가 후칭윈 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다발을 전달했다.
당연한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 주인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이 길에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현금 뭉치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후 씨는 당시의 결심에 대해 “돈을 본 당시에는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의 것이야’라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도리를 지켜 그것을 얻는다’는 의미의 성어 ‘(君子爱财) 取之有道’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나는 배우다. 배우는 영혼의 기술자(工程师)다. 내면에 가진 것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마음 속에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때 무대에서도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이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배우로서의 가치관을 드러냈다.
그녀는 ‘내 것이 아니면 탐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적지 않은 돈을 줍고도 경찰에 신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배우로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법한 미담임에도 스스로 내세우지 않았다. 상하이의 한 30대 여성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역시 후칭윈이다. 멋지다”며 상하이의 국민배우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김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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