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傅儀)가 파란만장 했던 일생동안 가장 사랑했던 부인과 합장된다.
푸이 황제의 유족은 창춘(長春)의 만주국 황궁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푸이 황제의 세번째 부인 탄위링(譚玉齡)의 유골을 되돌려받아 허베이(河北)성 이(易)현에 위치한 푸이 황제의 능에 합장할 예정이라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27일 전했다.
푸이 황제는 모두 5명의 부인을 맞았는데 아편중독과 정신병적 증세를 갖고 있던 황후 원용(媛容)과 자살기도와 이혼소송까지 불사한 숙비 문수(文秀)에 이어 맞이한 상(祥)귀인 탄위링을 가장 사랑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주족 귀족의 딸로 태어난 탄 귀인은 베이징의 고교에 다니고 있던 1937년 만주국 황제인 푸이에게 소개돼 만주국 황궁에 입궁했다. 푸이를 정치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일제 관동군사령관 요시오카(吉岡)가 탄위링을 소개시켜 줬다는 게 정설이다.
탄 귀인은 푸이에게 총애를 받았다. 박물관에 남겨진 탄 귀인의 사진 뒤에는 푸이 황제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위링'이라는 글도 남겨져 있다.
그러나 탄 귀인은 입궁 5년만인 1942년 22세의 나이로 급사하고 말았다. 감기약을 잘못 써 숨진 것으로 전해졌지만 독살설도 제기되고 있다. 사후 푸이는 탄 귀인을 명현(明賢) 귀비로 봉했고 길일을 정해 책봉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선통제(宣統帝) 푸이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황제 자리에서 밀려난 후 톈진(天津)의 일본조계에서 기거하다 1934년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인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했다.
푸이 황제가 탄위링 사망 후에 네번째 부인으로 맞은 복(福)귀인 리위친(李玉琴.당시 15세)은 패전후 피신생활을 하다 58년 이혼했다. 리는 이후 한 기술자와 재혼했다가 2001년 간경화로 숨졌다.
푸이는 전후 10년간 전범관리소에서 수감돼 있다 출소한 다음 평민으로 복귀, 잠시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만년에 역사집필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엔 37세의 간호사 리수셴(李淑賢)을 만나 마지막 결혼생활을 했으나 5년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