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접어들면서 파마를 하러 가면 머릿속에 흰 머리 몇 가닥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많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대답은 ‘몇 가닥 없어요’였다. 거울에 비친 모습엔 전혀 보이지 않으니 나도 이내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머리를 빗다가 흰머리 한 가닥이 눈에 딱 들어왔다.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흰머리가 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내 머리에 난 흰머리를 보니 마치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도 일어난 듯 얼른 핀셋을 찾아와 거울 앞에 서서 흰 머리 한 가닥을 집어냈다.
한참을 낑낑거리다 간신히 흰 머리카락을 집어 냈는데, 힘 조절을 잘 못한 건지, 뽑히진 않고 몇센티를 남겨놓고 그냥 뚝 끊겨버렸다. 남은 머리카락을 잡으려니 너무 짧아 도저히 잡히지가 않았다. 머리카락이 짧아지니 흰머리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신랑은 몇 년 전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처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땐 툭하면 와서 뽑아 달라는 통에 흰머리 몇 가닥 가지고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고 핀잔을 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한 가닥만 보여도 이렇게 가슴 철렁 한 일이었구나.”
나의 친할머니는 지금 90세가 넘었는데도, 염색 한 번 한 적이 없다. 염색을 할 필요가 없는 검은 머리이기 때문이다. 연세가 들어 머리 숱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뽀글이 파마를 할 수 있을 만큼은 풍성하고 거기에 윤기까지 흐르는 검은 머리를 소유하고 계신다. 이런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당연히 할머니의 검은 머리 유전자를 타고 났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친정엄마도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연배보다는 확실히 흰머리가 덜 한편이다. 거기에 중국친구가 나 같은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안난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던터라 나는 당연히 흰머리가 안 날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체 무슨 근거로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믿었는지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더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구나.
며칠 전 안타깝게 뽑지 못했던 흰머리 한 가닥이 오늘 아침 머리를 빗는데 또 눈에 들어왔다. 그 새 좀 자라서 잘 만 하면 핀셋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흰 머리카락을 발견 한 날, 난 아예 핀셋을 머리빗 옆에 갔다 놓았다.
“내 오늘은 너를 꼭 뽑고야 말리라!”
한참을 씨름한 끝에 간신히 흰머리 한 가닥만 집어냈다. 이번엔 처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결과는 실패. 머리카락에 힘이 없는 건지, 원래 흰머리는 잘 끊어지는 건지, 머리카락 하나도 못 뽑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이 들면 생기는 게 흰 머리카락인데, 이게 뭐라고 흰머리 한 가닥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다시 짧아진 흰 머리카락이 지금은 눈에 잘 안 띄지만, 또 며칠이 지나면 눈에 띌 것이다. 아마 그 때도 난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다시 머리카락 뽑기를 시도할 것이다. 이렇게 한 가닥 한 가닥 뽑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그 땐 지금 느꼈던 이 감정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나도 이렇게 조금씩 나이 들어 가는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거늘, 흰머리는 어떻게 즐겨야 할지, 과연 이것이 즐길 수 있는 일인지, 중국 엄마들이 한국 염색약이 좋다고 할 땐 관심도 없었는데 뭐가 좋은지 물어보러 가야겠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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