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한국학교 개교, 재중국한국인회 결성
상하이저널이 창간된 1999년은 한국학교와 재중국한국인회가 결성된 해이기도 하다.
1999년 11월6일 상해교민의 오랜 바람이었던 민족의 배움터 상해한국학교가 치신루에 개교하게 되었다. 당시 개교식 행사에는 신국호 총영사를 비롯 한인상공회 이상래 회장, 상해시 공안국 외국인관리 출입경 관리소 갈부순 부처장, 상해시 민항구 치바오진 인민정부 하근복 진장 등 많은 내외부 인사와 교민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또한 재중국한국인회가 1999년에 결성되었다. 중국 내 한국인 사회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한국인 사회 전체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면서 이들의 권익을 보호할 만한 민간 단체가 없었으나, 중국한국상회와 한국투자기업회의 회원 및 자영업자가 중심이 되어 재중국한국인회 결성을 준비하게 되었다. 재중국한국인회는 민간차원에서 중국내 한국인 사회를 대표하면서, 중국 내 한국인 사회의 권익신장과 친목도모에 기여하게 되었다.
2000년
韩·中 관세율 인하 양해각서 체결
뉴밀레니엄바람이 불었던 2000년, 한국과 중국은 관세율 인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한국의 대중국 무역에 대해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주었다. 중국은 방콕협정(아시아 태평양 지역경제사회 위원회와 개도국간 무역협상에 관한 제1차협정)에 가입하기 위해 한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주요 내용은 한국이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을 지지하고 중국은 한국 수출품 162개 품목에 대해 일반관세율보다 평균 15.9% 관세인하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관세율 인하 혜택은 중국의 정식 가입한 4월부터 적용되어 한국과 중국 양국이 상대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므로 양국간 교역이 증대된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한 2000년을 보내면서 12월 총영사관과 유학생들도 뜻깊은 행사를 마련했다. 상해에 주재하고 있는 39개 국가의 총영사단에서는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위한 크리스마스 바자회를 열었다. 또한 상해 한국유항생 총연합회는 상해 한국유학생을 위한 2000 송년의 밤을 개최하여,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2001년
中 WTO 가입, APEC 회의 上海 개최
2001년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가입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해이다. 이와 함께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상하이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9월 17일 중국의 WTO 가입 조건에 관해 공식 합의에 도달했다. 중국은 이에 발맞춰 중국대외무역경제합작부 외자사는 WTO 가입 후 외상투자기업에 대한 `지분제한’, ‘외환평형’, ‘수출 의무비율’등 3대 제한 규정을 철회하기도 했다.
또한, 제9차 APEC 회의가 상하이에서 10월 15일부터 7일간 개최됨에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이 교민들로부터 주목 받기도 했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쇄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반 테러 공조대책과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한편, 중국 정부가 그동안 제한하던 한국, 대만, 홍콩, 마카오 유학생의 의사고시 응시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2002년
한중 수교 10주년, 국제선 푸동공항 이전
한중 수교 10주년인 2002년, 상하이에서는 푸동공항으로 국제선이 이전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된다.
6월 10일 홍차오공항(虹桥机场)의 일부 상해-인천 노선 푸동공항(浦东机场) 이전을 시작으로 국제선 포동공항 이전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한․중 수교 10주년 리셉션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泽民) 중국 국가주석은 친서를 교환, 양국 간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또, 중국 주식시장이 A증시를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기 시작했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도 펀드를 통해서 중국 증시에 간접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이는 중국 증시의 완전 개방 예고제와 같은 조치였다.
한편, 현재 치신루 인치싱(银七星)으로 잘 알려진 상하이 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된 해이기도 하다. 이 대형실내스키장은 중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건설, 총면적 25000㎡, 총 건축면적 52000㎡에 달하며 동시에 수 천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다.
2003년
SARS로 들썩인 중국, 노 대통령 上海 방문
2003년 4월부터는 사스(SARS)의 여파로 상하이가 들썩였다. 각종 국제적 주요 회의와 모임이 취소되고, 까르푸 등 대형할인마트에서는 마스크와 기타 생필품 사재기가 이어졌다. 사스의 충격으로 아시아 통화가 추락하고 한국수출기업도 많은 피해를 봤다. 5월에는 급기야 상하이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해 더욱 충격을 추었다. 이에 상해한국상회는 5월20일 상하이 자선기금회에 SARS 예방 퇴치기금 92,301元을 전달했다.
2003년 7월9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상하이를 방문, 한중 경제인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노 대통령은 상하이와 서울•부산, 중국과 한국이 동북아시대의 사이좋은 이웃으로 함께 전진해 나가자고 동북아 비전을 제시했다
2003년 하반기부터는 한국학교에 대한 행사가 많았다. 노루표페인트의 기증을 시작으로 한국학교 신축기금 마련을 위한 가을잔치 개최되면서 익명으로 50만위엔이 기부되는 등 기부문화가 자리잡게 됐다.
2004년
주상하이총영사관 이전, 교민송년의 밤 개최
2004년에는 한국학교와 주상하이총영사관이 이전하는 해로 기록되었다. 한국학교는 신좡의 상하이 강성중학(上海康城)으로 초중고 전체가 이전했으며, 4월 12일에는 주상하이총영사관이 기존 궈마오빌딩에서 현재의 완샨루(万山路 60号)로 이전했다. 총영사관은 단독 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확장된 민원실구비로 보다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또한 kotra가 주관하는 한국상품 전시회가 상하이 신국제박람중심에서 10월에 열렸다. 당시 전시회에는 농심, 만도, 풍산, 새한, 락앤락, 크린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192개 업체가 참가하여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그 해 7월에는 이종산 회장(SKC 중국본부)를 필두로 한 제12대 상해한국상회 집행부가 출범하고, 12월에는 송년의 밤을 마련해 교민사회를 다시 한 번 아우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05년
인민폐 2% 절상, '제1회 교민큰잔치' 개최
2005년 가장 큰 이슈는 인민폐 2% 절상에 관한 뉴스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7월 21일 오후 7시에 인민폐 평가절상을 전격 발표, 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인민은행이 발표한 이날 성명에는 2%가량의 절상조치와 함께 10여년 이상 운용해온 달러화 페그제를 시실상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중국을 강타한 대장금 열풍이 중국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간 이어온 한류바람에 쐬기를 박는 대장금은 상하이저널이 각 업계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5년 최고 히트상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또 2005년에는 교민 8천여명 참가한 가운데 제1회 교민 한마음 큰잔치가 마련되었다. 5월 우중루 상홍중학에서 열린 큰잔치는 상하이 교민 역사상 가장 많은 수가 참가한 행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중국 정부가 노동자 권리를 대폭 강화한 근로계약법 초안을 발표하여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의 노무관리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해 6월에는 상양시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해이기도 하다. 불법 짝퉁 집결지라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있었지만, 상하이에 발들인 관광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5만 교민들의 염원으로 지어진 한국학교가 신축사옥이 모습을 드러내 9월 학기부터 새학교에서 학생들을 맞이한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