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 둘째에요. 제가 결혼하고 바로 중국으로 와서 어느덧 22년이 되어갑니다. 유난히 한국은 더웠다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소화도 잘 안된다면서요. 매일 아버지 소화기관이 튼튼해져 사는 동안은 드시고 싶은 거 드시고 건강하셨으면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급작스런 폐렴 증세로 입원하셨다는 소리 전해 들으며 80 넘은 아버지 연세가 실감이 납니다. 더불어 긴 시간 1년에 한두 번 얼굴 보여 주고 전화 몇 통 하고 용돈 보내드리고 자식 할 일 다한거마냥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후회가 스쳐갑니다. 아버지 뵈러 이번 여름방학에 언제 갈까 고민하며 내 상황부터 살피는 모습 보며 자식의 이기적인 모습을 저를 통해 봅니다.
건강이 안좋으시다니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 중 좋은 거, 애틋한 것만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자랄 때는 술이 과한 아버지 모습만 떠오르며 힘들어 했는데 요즘은 시 외곽의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 시외버스터미널을 향해 문을 나서는 당신의 유난히 왜소했던 뒷모습만 떠오릅니다. 평생 선생님으로만 사셨으면 좋았으련만 중간에 사업을 하시다 진 빚을 15년 넘게 갚으시며 저희 사남매를 대학까지 졸업하게 해 주셨는데 저흰 당연하게 여겼네요.
제가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삶의 고달픈 순간이 참으로 많았는데 당신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새삼 돌아보아집니다. 그 시대에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하는 부모가 있었나요? 나이 70 넘어서야 수줍게 전화로 “사랑한다, 둘째야” 하던 아버지.
비록 사랑한단 표현은 못하셨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는 당신께 탁구도 처음 배웠고 그림도 처음 배웠고 글도 처음 배웠고 어린 딸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처음 보여주신 이도 아버지였네요. 나의 자녀들에게 보이는 미술 재능을 보며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재능임을 봅니다. 많은 걸 제게 선물로 주셨어요.
몇 해 전 98세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평생 곁에서 모셨음에도 그리 슬프게 우시던 아버지, 그 후 급격히 약해져가던 아버지 모습에 저는 또 슬펐습니다. 아버지와 이 세상에서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봅니다. 큰 아이가 인사하러 갔을 때 아이 아빠 이름을 부르며 왔냐고 해서 모두 웃었지만 총기 넘친 아버지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 들고 있음에 슬펐습니다.
남은 시간들 건강하시길, 평안하시길 소원하고 또 소원하는 시간들입니다. 살아낸 시간들 내내 자식들에게 모든 걸 다 주시고 가시고기 마냥 떠나가는 당신 모습에 마음이 아리는 시간들입니다.
아빠, 저 다음주에 한국 가요. 아빠 보러. 가면 바로 날 알아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동안 꼭 옆에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저를 태어나게 해 주시고 당신 인생을 투자하며 길러 주시고 사랑해 주셨어요.
사랑합니다.
2018년 8월
상하이에서 둘째 드림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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