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서방문화와 미
서양의 물품, 선교사 등을 통해 서방의 생활방식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이때의 미의 기준은 전족을 하지 않고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이 시기 여권운동을 창도하는 <여계종(女界钟)>이라는 서적이 출간돼 여성들의 전족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긴 머리를 자르고, 책을 읽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미인으로 싸이진화(赛金花)가 있다. 그녀의 삶은 공사(公使)부인이라는 상류층에서 밑바닥 기생인생까지 파란만장했다. 결혼을 3번이나 했으며 남편을 따라 유럽 4개국을 방문했으며 수년간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1910년대, 일과 독립
20세기 초에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이 한창이던 이 시기 자유연애, 자유혼인, 신형 혼례가 도시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문화운동’이 여성들에 준 영향은 아주 컸다. 이 시기 여성들은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비녀, 팔찌, 귀걸이, 반지 등 장식품을 크게 사용하지 않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여성인물은 양부워이(杨步伟). 난징 명문귀족 출신으로 비범한 자질을 갖춘 여성이었다. 22세때 중국 첫 숭실여자중학교(崇实女子中学)의 교장을 맡았고 그 후 일본 도쿄 유학을 거쳐 베이징에 사립 병원을 세웠다. 절제된 아름다움, 일과 독립성은 평범한 외모의 양부워이를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었다.
1920년대, 재능
이 시기 미의 기준은 재능을 갖춘 여성이다. 반봉건 혁명운동인 ‘5.4운동’은 그 동안 억눌리고 침체된 사회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를 뜻하는 대명사인 ‘타(她)’가 새로운 한자로 탄생했다. 화가 류하이쑤(刘海粟)가 누드모델을 기용해 큰 사회적 파장과 여론을 몰고 오기도 했다.
이 시기 아름다운 여성상은 린후이인(林徽因). 그녀는 중국의 유명한 낭만 시인 쉬즈머(徐志摩)와의 사랑이야기로 9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명하다. 20년대 아름다움과 재능을 겸비한 대가집 규수였던 그녀는 그 시기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출신, 견문, 재능, 아름다움을 두루 다 갖춘 여성이었다.
1930년대, 동서양 미의 조화
중국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여성이 이 시대 미인상이었다. 파리의 유행복이 바다를 건너 상하이에서 유행되고 곧이어 전국 각지에서 유행됐다. 디자인 변화가 가장 많았던 복장은 치파오(旗袍). 거의 1년마다 새로운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미의 여신은 영화배우 후뎨(胡蝶). 그녀는 중국의 전통적인 미인상을 타고났으며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둥근 얼굴형에 새하얀 피부와 보조개의 그녀 때문인지 당시 보조개가 들어가는 여성이 미녀로 간주됐다.
1940년대, 정치
이 시기 정치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들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쟁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인심이 흉흉하고 물품이 부족한 시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의 위기 앞에서 유행이 무슨 소용이랴.
이 시기 대표적인 여성상은 바로 송메이링(宋美龄)이다. 비록 20년대 그녀가 입었던 웨딩드레스가 상하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웨딩드레스 붐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송메이링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던 것은 다름아닌 전쟁과 정치였다.
1950년대, 新중국 건설
이 시대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상은 신 중국 건설에 청춘을 바친 사람이다. 이때는 외모를 가꾸는데 신경쓰지 않고 일에 적극적인 여성이 아름답다고 여겨졌으며 또 가정배경, 문화, 취향 등을 따지지 않고 군인, 노동자, 농민과 결혼하려는 여대생들이 아름다운 여성으로 간주됐다.
당시 아름다운 여성의 대표는 카추샤(喀秋莎). 먼 곳의 애인을 그리며 노래하는 모습, 건강하고 정직한 여성상은 이 시대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1960년대 ‘철의 여성’
억척스러운 형상이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여성상이었다. 남녀 관계는 ‘동지’, ‘전우’, ‘계급(阶级)관계’로 간소화됐다. ‘여자라서…’라는 성별의 차이는 망각된 시대였다.
이때 본보기로 칭송 받던 싱옌즈(邢燕子)는 짧은 단발머리, 검은 피부, 건장한 체격…. 텐진 출생의 그녀는 1958년 대도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농촌으로 가서 힘든 노동에 뛰어들었으며, 당시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1970년대 ‘금지된’ 아름다움
아름다움, 사랑, 감정… 이런 것들은 계급투쟁에 묻혀 금기시된 것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1969년 이후부터 지식청년들 가운데서 사랑노래, 사랑에 관한 시 등이 비밀리에 유행됐다. 이 시기 많은 사람들은 가수 등려군(邓丽君)의 달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매료됐다. ‘여성스러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노래를 통해 느끼게 됐다.
1980년대 개성
박쥐옷, 기타, 모헤어 등 유행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물질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는 강한 자기만의 개성과 매력을 지닌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배우 류샤오칭(刘晓庆), 그녀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아름답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나선 첫번째 유명인이다. 그녀의 모습은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문 ‘튀는’ 행동으로 자신감 넘치는 개성은 많은 이들이 인정했던 부분이다.
1990년대 팔색조의 매력
팔색조와 같이 다양한 모습을 가진 여성. 아름다움에 대한 본격적인 추구가 시작됐던 시기이기도 하다. 타고난 미인보다는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여성, 화장을 통해 외모를 예쁘게 꾸밀 줄 아는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한 장만옥(张曼玉), 데뷔 초기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앳된 소녀였던 그녀는 때로는 순수한 듯, 때로는 요염한 듯,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팔색조 같은 매력을 보여준 배우다.
윤가영 기자
플러스광고
[관련기사]
전체의견 수 0
Today 핫이슈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