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旗袍)는 자타공인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의상이다. 화려한 색감과 여성의 몸매를 부각 시켜주는 모양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치파오는 중국 내 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명절 때 치파오를 입는 것은 이미 중국의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치파오 모습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숨은 의미가 담겨있다. 치파오가 현재의 모습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보자.
치파오의 기원
치파오는 중국의 소수 민족 중 하나인 만족(满族)이 최초로 입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44년, 만족의 통치자가 한동안 베이징을 점령했다. 그때 치파오가 베이징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고, 치파오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이때다. 만족은 치인(旗人)이라고도 불렸는데, 때문에 치인들이 입는 옷이라고 하여 치파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만족의 치파오
그러나 만족의 치파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파오와 거리가 멀다. 유목민 특성상, 만족의 의상은 여름에는 따가운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차가운 냉기를 막아 줄 수 있어야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 시킨 것이 바로 치파오다. 긴 소매와 발까지 내려오는 옷 기장이 햇빛으로부터 온몸을 보호하고 두꺼운 옷감이 보온 효과를 냈다. 만족의 치파오는 옷 통이 큰 것이 또 다른 특징인데, 덕분에 남녀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치파오를 입었다.
치파오와 상하이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서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가 사라졌다. 또한 동시에 서양개방이 이뤄지면서 많은 서양 문물이 중국으로 유입됐다. 이러한 큰 변화들이 생기는 와중에, 첫 번째 개량 치파오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장소에서 나타났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상하이다. 1910년대 상하이의 어떤 한족(汉族) 여인이 하늘 색 개량 치파오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목격됐다. 옷이 너무 화려해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 후, 모두 치파오를 입기 시작했고 상하이에서 일어난 치파오 열풍이 중국 전역 각계각층으로 퍼졌다.
치파오와 여성권리
20세기 초, 치파오가 유행했던 것은 단지 그것의 아름다운 때문만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의 봉건왕조가 사라진 지 얼마 안됐던 1920년대, 여성의 권리는 상당히 무시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하이에 치파오가 출현했고, 그것을 본 여성운동가들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당시, 여성들은 의상에서 조차 남성들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노출은 대개 허용되지 않았고 몸매를 가리는 옷들이 주를 이뤘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개혁을 도모하던 여성들은 이점을 이용했다.
그들은 치파오를 오늘날의 모습에 가깝게 개량해 입고 다녔다. 여성의 몸매를 있는 그대로 부각시키는 치파오는 그들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과 동시에 그들의 사상인 즉, 남성의 부당한 권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 정신을 제대로 표출했다.
현대의 치파오
30년대 치파오
30년대의 여성권리운동 이후, 치파오는 중국 여성들의 삶에 녹아 들었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치파오는 계속된 개량을 통해 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게 됐다. 색감부터 디자인,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주문 제작 또한 가능하다. 동시에, 허리둘레와 가슴둘레가 줄어들어 몸매가 과거의 치파오를 입었을 때 보다 더 부각된다.
다만 한 가지, 치파오는 단지 아름다움과 여성스러움의 대명사가 아니라, 100년 전부터 전해져 온 중국 여성권리의 중요 상징 중 하나이다. 때문에 치파오는 전통의상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중국 인권운동의 일부라는 큰 의미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학생기자 나인열(상해중학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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