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한반도에 밀려든 핵구름은 과연 어떤 '기상이변'을 초래할 것인가.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 몰고온 엄청난 파장에 동북아가 흔들리는 가운데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관련국들의 '손익계산'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 그리고 열강들의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면서 한반도가 또다시 거대한 격동에 휘말리고 있다.
◇복잡한 외교전선= 일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과거 중국.러시아와 함께 형성했던 '북방벨트'에서 거리를 둔 채 홀로 서있는 듯한 양상이다.
마찬가지로 한미일 3각 공조 틀에서 얼마 전부터 거리를 두려 해온 한국의 경우 미국과 일본의 압박 공세 속에 더욱 고립위기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특히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응징하려는 미국이 예상보다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한국은 고심하고 있다. 유엔 결의가 나오면 이를 준거로 대북 정책 전반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약속한 터여서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처지다.
현안은 역시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 문제로 좁혀진다.
일단 정부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정부의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달 내에 내용있는 조치를 만들어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에 보고하면 된다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상당히 다급해보인다. 미국이 워낙 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17일 방한하자 마자 금강산 관광에 대한 미국의 속내를 거침없이 밝혔고 19일에는 그의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국에 온다.
여기에 미국의 뜻을 한발 앞서 실천해온 일본 외무상도 서울에 와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게 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연일 대책 마련에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금강산 관광을 손대기로 했으나 구체적으로 민간기업이 하는 사업에 미칠 부작용이 우려되고 PSI에 참여를 확대하자니 자칫 남북의 물리적 충돌이 걱정된다.
북한을 축으로 한 중국과 러시아 관계도 급변하고 있다. '군사행동'을 배제하긴 했지만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출 경제제재가 망라된 안보리 결의안에 두나라도 찬성했다.
여기에 중국은 이미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화물검색을 강화하고 은행창구에서 대북 송금을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제재에 착수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북중간 틈새를 파고든 러시아도 조만간 미국이 대북 제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촉구할 경우 언제든 북한과 파열음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상대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동병상련'이 새로운 공조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양국은 지난 13일 정상회담을 통해 '공조'를 확인한 바 있다.
◇각국의 속내는 = 미국이 강공 드라이브를 취하는 것은 다분히 국내 정치적 요인과 연관돼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을 최고의 외교.안보정책 목표로 삼아온 부시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핵실험, 나아가 핵보유는 대형 변수에 속한다. 특히 한달도 남지 않은 중간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단호한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자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핵보유에 이어 북한이 핵을 제3국,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전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부시 행정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미국의 계산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비둘기파인 힐 차관보까지 내세워 '강한 코멘트'를 쏟아내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강공 드라이브에 얼마나 참여할 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북한이 추가로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핵이전을 하려할 경우 부시 행정부는 선거에도 지고 북핵 대처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상황은 유동적이다.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며 코너에 몰렸다.
그러나 살짝 틀어서보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받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핵이 없는 이라크가 허망하게 미국에 무릎 꿇는 장면을 지켜본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의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게 됐다.
유엔을 중심으로 경제제재를 가한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에 대비해온 북한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체제, 자립경제를 유지해온 북한이 유엔 제재에 얼마나 타격을 입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의 내재적 위험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사치품마저 끊어진 북한 집권층이 동요할 가능성,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을 둘러싼 권력 암투가 벌어질 경우 북한 체제가 급격히 동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 사태를 맞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일본은 일단 많은 혜택을 본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우익화를 도모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과거사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만일 북한이 핵탄두에 탑재할 능력을 갖출 경우 일본도 마냥 행복해 할 수 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경험을 갖고 있는 일본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한국은 일단 큰 손실을 입고 있다. 포용정책의 궤도 수정이 언급되는가 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대표적인 대북 사업도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한국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훼손받는 상황이다. 일각에서 한국도 핵무장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1992년 미군이 철수한 전술핵무기를 다시 들여오자고도 하지만 이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지혜를 어떻게 짜내느냐가 한국의 향후 성적표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리에도 성공할 경우 "역시 북한을 다루는데는 한국이 가장 효율적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이는 곧 북핵 방정식에서 한국이 상수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정치적으로도 북한 문제는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인 만큼 노무현 정부가 효율적으로 북한문제에 대처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중국은 고민이 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까지 나서 북한의 신중한 행보를 촉구했지만 무시당한 중국은 대북 영향력을 의심받는 처지에 몰렸다. 그리고 자국이 의장을 맡아온 6자회담도 사실상 재개 가능성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바로 옆에서 북한 핵문제라는 악재가 돌출되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유지는 앞으로 좀 더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워낙 복잡 다기하게 전개되는 북핵사태의 파장이 어떻게 펼쳐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단기적으로 최근 존재감이 부각되는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