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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농부들…

[2018-11-10, 07:11:03]

‘기획의 힘’ 상하이 진산 농민화촌

 

 

 

 
그림 그리는 농부들, 농민화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 농촌의 삶과 예술이 만난 새로운 경지일까? 농사철에는 논밭을 일구고, 도화꽃 필 무렵엔 캔버스 들고 나와 수채화를 그리며, 명절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벽화에 붓질을 하는…. 중국 장강(长江) 남쪽, 강남(江南)의 농촌 풍경 속 화가 마을을 연상했다면 입구 매표소 앞에서 무참히 깨진다. 입장료를 내고 관광지 문턱을 넘어서면 한 눈에 기획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빛 바랜 벽화들을 따라 30~40분이면 휘 돌아 볼 정도의 작은 마을에 농민화가 70여명이 산다. 진산(金山) 농민화촌, 나란히 줄지어 들어선 작업실 부스 한곳 한곳 발을 들여놓고, 그림 한 점 한 점 들여다 보면 어느새 사회주의 미술의 꽃 ‘농민화(农民画)’의 매력에 빠져든다.

 

상하이에서 60km 떨어진 진산구(金山区) 펑징진(枫泾镇) 중홍촌(中洪村)에 농민화 마을이 있다. ‘진산 농민화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그림 그리는 농부들이 모여 지낸다. 그림 좀 그리는 농부 몇 명이 화가 퍼포먼스를 하는 곳인 줄 알았던 관광객들은 수준급 작품에 놀란다. 미대생들이 농촌 가꾸기 봉사활동을 했거나 이 마을 출신 화가들이 귀농했을 거라 생각한 한국 교민들도 믿기지 않는 눈초리로 작품을 감상한다. 농민화가가 직접 현장에서 그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신뢰 눈빛을 보낸다.

 

그림이 밥벌이되는 농촌


 

 

 
이곳이 농민화촌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06년이다. 중국 정부가 특화마을로 조성하면서부터다. 정부는 농민화를 그리는 마을 주민들에게 작업실 겸 화랑을 내줬다. 마을 한쪽에는 농민화 전시실도 갖췄다. 관광객들을 위해 관광안내센터, 어린이놀이터, 낚시터 등도 조성했다. 2년 후에는 특색있는 전국 각지 농민화촌 화가를 초청해 부스를 제공했다. 관광객들은 지린, 산동, 다롄, 장시, 윈난, 칭하이, 산시성의 농민화풍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얻게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외국 귀빈을 위한 공식 선물로 채택돼 이목을 끌었다. 전통 명절 때마다 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을 유입시켰다. 농민화를 포함 다양한 소비가 이뤄졌다. 45㎢의 중홍촌 일대가 그림으로 밥벌이가 되는 화가촌으로 변신했다. 중국 정부의 기획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 집안 4대 9명이 농민화가


초기 농민화촌은 약 50가구, 100명 정도 시작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가구 수는 절반 가량 줄었지만 농민화가는 70여명 정도로 숫자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한 집안에 아버지와 아들 2대는 물론 4대가 농민화를 그리는 집안도 있기 때문.

 


 

 
농민화가 천(陈, 49) 씨 가족은 1921년생 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 4대 9명이 그림을 그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농민화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던 할머니가 재작년 향년 96세로 돌아가셨다. 한때 활발히 작품활동을 했던 어머니는 이제 붓을 놓고 그림 그리는 사위 뒤편에 말없이 서 있다. 가족의 위대한 유산, 중흥촌 민간예술을 천 씨 부부는 이어가고 있다.

 

 

 

 
천 씨 가족뿐 아니라 농민화촌 화가들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더 이상 농사가 주업은 아니다. 농민화를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시켜 판매하고 스토리에 그림을 입혀 책으로 출간하기도 한다. 전국 대회 수상경력도 쌓여간다. 정부가 무상 제공한 작업실 겸 그림가게에서 얻은 수익만으로 한 가족 생활이 충분해졌다. 정부가 지원한 농민화촌, 대를 이어 지켜가는 농민화가들, 문화예술진흥기금이라고 생각하니 입장료 30위안이 아깝지 않는 동네다.

 

부엌에서 시작된 농민화


 

 
중홍촌 규모의 여러 마을(촌)을 포함하고 있는 펑징진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 경계였던 고장이다. 천변에 세워진 분계표지석이 입증하고 있다. 또 명나라 때는 장쑤성과 저장성을 나누는 지점이었다. 상하이시로 편입된 것은 오래지 않는다.


농사를 짓던 중홍촌 사람들은 겨울 농한기가 되면 목각공예, 염색, 자수, 종이자르기(剪纸) 등 지금은 중국 전통 공예가 된 소일거리를 했을 것이다. 붓질 좀 하는 농민들은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명절에 한번씩은 여럿이 모여 마을 벽에 공동 작품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농민화촌 내 야외 광장에 농가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농민화는 부엌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농민화촌에 유일한 이 음식점 이름도 ‘부엌방(灶头屋里)’이다. 실제 중국에는 ‘부엌화(灶头画)’, ‘부엌벽화(灶壁画)’가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부지깽이로 부뚜막에 그린 그림들이 민화의 한 장르가 된 것이다. 앉아서 부뚜막에 검정 숯을 주재료로 데생을 하던 것이, 점차 부엌벽면에 각종 천연염료들을 이용한 과감하고 화려한 화풍으로 진화한 것. 중홍촌에서 40km 거리인 저장성 자싱(嘉兴)이 부엌화로 유명하다. 자싱 부엌화가 청나라 중기부터 시작됐으니, 진산 농민화 역사는 약 200년 전 농한기 부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민화의 출생의 비밀


농민화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대약진 운동 시기다. 부엌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던 농민화에 정치색이 입혀진다. 농민들에게 혁명정신과 생산력 증진을 위한 그림을 마을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그리도록 했다. 1960년대 들어 중홍촌 사람들의 소소한 취미에 ‘농민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벽에 그렸던 그림을 종이로 옮겨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민화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전국 10여 곳이 지역 특색을 반영한 농민화로 주목 받았다. 그 중 진산 농민화는 강남(江南) 지역의 자연풍경과 생활풍습을 화려한 색채로 담아냈다. 이후 농민들 스스로 농민화의 미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진산농민화전’을 열고, 이어 해외 순회 전시를 하며 중국 최고 민간예술로 손꼽히게 된다.

 

농민화란?

 

 

 

 
최근 서울에서 한국민화협회 초청으로 중국 산동성 농민 55명의 농민화 55점을 전시했다. 농민화도 민화에 속한다. 한 민족의 생활을 그린 서민적인 그림이 민화라면 농민화는 농민의 생활을 화폭에 옮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밀레의 만종, 이삭줍는 여인들도 농민화에 속한다. 진산 농민화 역시 농가의 사계절, 중국의 명절과 풍습, 농촌 풍경 등이 주를 이룬다. 상하이 고객을 의식한 동방명주도 있고,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띠별 그림도 있다. 작은 화폭에 중국의 풍광, 다양한 소수민족,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있다.

 

 

 

 
농민화는 또 농민, 무명화가들의 작품이므로 부담 없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진산 농민화는 종이에 그린 유리 액자 표구는 80위안(1만 3000원), 캔버스 천에 그린 그림은 최소 300위안(5만원)으로 크기, 재질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그림 모두 직인이 찍힌 원작이라는 점도 큰 매력이다. 농민화를 소재로 한 책갈피, 컵, 퍼즐, 자석장식 등 기념품과 선물도 다양하다.

 

고민에 빠진 농민화촌


특화촌으로 조성된 지 12년, 진산 농민화촌은 고민에 빠졌다. 농부들의 그림 소질을 길러내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는 성공한 듯 했다. 그러나 관광객의 만족도는 예전만 못하다.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정서가 깃든 농부의 순수한 그림을 기대했던 이들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10년 넘게 삽이 아닌 붓을 든 농부가 농부인가, 진정 농부가 그린 농민화인가 갸우뚱한다.

 

고수미 기자

 

· 金山区枫泾镇朱枫公路8258弄169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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