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 남해의봄날 | 2017. 2.
서양화가 이미경(1970~) 님이 1997년부터 20년간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려온 오래된 구멍가게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서울을 떠나 잠깐 머물고자 이사한 퇴촌에서 ‘관음리 구멍가게’를 만나, 동전 하나 손에 쥐면 쪼르르 달려가 군것질 거리를 고르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처음엔 볼품없어 보이던 낡은 구멍가게가 지닌 은근한 아름다움에 반해,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뚝심 있게 살아온 주인의 삶이 궁금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출산 이후 다시 캔버스 앞에 앉는다.
한두 시간이면 쓱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책이지만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풍경처럼 한참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가는 펜 선이 이어지고 겹쳐지게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그린 그림들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오래되고 빛바랜 것들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표현해 낸다. 빛에 따라 오묘하게 색이 변하는 슬레이트 지붕의 질감, 누군가 뚝딱 만들었을 것 같은 손때 묻은 벤치, 문 창살 창호지 팽팽히 바른 미닫이문과 반지르르한 쪽마루, 선반 위 켜켜이 쌓인 물건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가게 앞 평상과 사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나무 그림을 가만히 오래 바라보게 된다.
국민학교 입학부터 아파트 생활을 한 나에게 넉넉한 툇마루와 아름드리 고목이 어우러진 구멍가게의 풍경은 조금 낯설다 생각하며 책을 들었는데, 목화솜 이불 사이 넣어 둔 유기그릇, 할머니의 반짇고리, 공중전화, 달고나의 추억 등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과 글이 희미한 추억들을 생생히 살아나게 해준다.
우리 주위의 낯익은 것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마모되고 낡은 것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해주고 늘 함께여서 당연한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돌아보게 해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기억과 풍경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미화한 면이 없지 않고 작은 판형의 책이라 원화를 충분히 느끼기 힘든 단점이 있지만, 이 겨울 온기를 원하는 친구에게 빌려주고 싶은 책이다.
박세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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